
애굽에서 노예 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심히 강대해지자 바로는 불안을 느꼈습니다. 전쟁이 나면 애굽의 대적과 힘을 합해 반기를 들고 도망칠까 염려했습니다. 완전 무보수 노예들이 없어지면 대규모 건축공사를 이룰 방도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97) 도마의 고백
화창한 봄날 송사리 가족이 봄소풍을 떠났다. 가족은 모두 네 명, 들뜬 마음으로 적당한 곳에 자리잡고 재밌게 놀고 있었다. 그런데, 분명 네 명의 가족이 놀고 있었는데, 놀다 보니 다섯이다. 이상해서 아빠 송사리가 “동작 그만!” 가족을 체크하기 시작한다. “나, 아빠 송사리” “당신, 엄마 송사리” “너, 늠름한 아들 송사리” “예, 저는 이쁜 딸 송사리” 그런데 송사리가 하나 더 있다. .. 요한복음(96) 부활하신 주님의 선물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 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 나태주님의 ‘선물’이란 시다. ‘선물’이라는 또 다른 시에서 ‘하루하루가 선물’이라 했던 시인은 아침에 일어나 만나는 밝은 햇살과 새소리, 맑은 바람과 푸르른 산을 선물로.. 정말로 하나님의 동역자인가?
모든 사역자들이 다 하나님의 동역자(同役者)는 아니며, 참과 거짓의 두 종류로 나뉩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비유처럼 돈을 받기 위해 의무적 형식적으로 일하는 삯군목자와 양 떼를 위해 자기 목숨까지 버리는 선한목자로 나누려는 뜻은 아닙니다. 분명히 순수한 의도를 갖고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사역자임에도 정작 하나님의 동역자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적 보수주의(3)] 가정을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1.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가정이 주는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 만큼, 참으로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 삶은 없을 것이다. 2. 우리가 가정에서 위로를 받지 못한다면 도대체 어디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요? 가정에서 행복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이 세상 어디에서 참된 행복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95) 눈물로 맞은 부활절 아침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生命)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것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기도의 시인이자 절대 고독의 시인인 김현승 님의 ‘눈물’이라는 시다.. 기쁨은 선택할 수 있는 선물이다
하나님은 지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말도 안 되는 명령인 것 같습니다. 인생이 항상 기쁨으로 가득 찰 수는 결코 없습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간과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벌을 받았고, 세상은 죄인으로 가득 차 있기에 고난은 인생살이에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요소입니다. 아무리 벌을 받은 결과이지만 범사를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면 궁극적으로 고난도 그분에게 기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경적 보수주의(2)] 도덕적 진리가 자유의 토대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동성애’다. 동성애는 선천적이거나 유전적인 것이 아니라, ‘죄’다. 그리고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성애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유일한 죄’인 것도 아니고, ‘가장 큰 죄’인 것도 아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들이 동성애자들보다 윤리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요한복음(94) 예수님의 빈 무덤
예수께서 고난주간이란 징검다리를 건너 성경대로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다. 4복음서는 모두 다 찬란했던 그날 아침을 부활 기사에서 절정 분위기로 다뤘다. 물론 요한을 좀 독자적으로 부활 기사를 다루기는 했다... 요한복음(93) 가상 3언
요한복음의 수난사는 좀 특이하다. 십자가 위에서 하셨던 말씀, 가상발언도 마찬가지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피맺힌 절규도 없고, 공관복음서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은 ‘다 이루었다’(30절)는 말씀을 전한다. 역사학자들과 성경학자들은 이 다른 언급에 다소 당황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요한의 이런 증거가 신선하다는 생각이다. 요한이 볼 때.. 매일 도피성에 숨는 신자들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신 후 그 구체적 적용에 관해서도 계시하셨습니다. 제 육 계명인 “살인하지 말지니라.”에 관해 고의적 살인과 우발적 살인으로 나눠 각기 처벌을 달리했습니다. 고의적 살인은 반드시 사형시켜야 하나 우발적 살인은 도피성을 두어 정당한 재판을 받게 했습니다. 그러나 도피성으로 피신했다고 무조건 살려줄 것이 아니라 전후사정을 잘 조사해 추후에라도 고의적 살인동기가.. 요한복음(92) 이 사람을 보라
죄가 없어도 때리고, 때릴 때 꿈틀거리며 소리 지르고, 괴로워하며 죽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 살기가 가득하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잔인한 오락일 뿐이다. 본문의 재판도 그랬다.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엄청난 재판이 마치 게임이나 오락처럼 진행되고 있다... 정작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
십자가 처형의 극심한 고통은 도저히 말로 설명할 재간이 없을 것입니다. 고래로 인간이 고안한 사형 방법 중에 가장 잔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기다 발가벗기어 치부를 완전히 드러내고 죽으니 수치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도 그 고통과 수치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요한복음(91) 재판받으시다(?)
예수님의 재판에 관한 기사다. 그런데 요한은 유대인의 재판과 로마인의 재판을 대조적으로 다룬다. 유대인의 재판인 안나스의 심문은 간단한 면접 기록 정도로 처리하고, 가야바의 심문도 그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겼다는 제보 정도로 가볍게 처리한다. 반면에 빌라도의 재판은 기사가 매우 충실하다. 요한의 의도는 빌라도가 예수님이 무죄였음을 증언하였다는 것(18:38, 19:4,6)과 예수님을 석방시.. 절름발이 걸음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능치 못하시는 일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면서까지 죄에서 구원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신 자가 신자입니다. 그 위에 당신을 아빠로 부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이든 응답받을 수 있는 권세까지 얻었습니다. 그래서 신자에겐 실망은 있어도 좌절은 없고, 실패는 있어도 멸망은 없습니다. 본 시편을 지은 다윗도 마찬가지로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 요한복음(90) 베드로가 부인하다
영국에는 네 종류의 신자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페이퍼 신자’(paper christian), 이런 신자는 해가 쨍쨍 쪼이면 터져서 못 나오고, 비가 오면 젖어서 못 나온단다. 둘째는 ‘시즌 신자’(season christian), 1년 중 절기 때, 즉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때만 교회에 나오는 신자다. 셋째는 ‘회색 신자’(between christian), 주일날은 크리스천이지만.. 요한복음(89) 체포당하시다
사실인지 확인할 길 없지만 어느 고등학교 사자성어 테스트에 “다음에 열거된 사자성어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마이동풍(馬耳東風), 풍전등화(風前燈火), 우이독경(牛耳讀經), 우왕좌왕(右往左往), 유야무야(有耶無耶), 용두사미(龍頭蛇尾), 조령모개(朝令暮改), 일구이언(一口二言), 당동벌이(黨同伐異), 뇌물수수(賂物授受), 안면박대(顔面薄待), .. 천의 얼굴을 가져야만 하는 신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들의 인간적 의만, 그것도 하나님 앞에서조차 자랑하려 들었습니다. 그들이 주님께 야단맞은 것은 자업자득이었습니다. 문제는 천국에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도 외식함으로써 그들을 보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들처럼 외식하도록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하나님 앞에선 물론 사람들 앞에서도.. 신자가 죄를 안 짓는 법
신앙생활 수십 년 하신 분들의 한결같은 불만은 “왜 나는 아직도 이 모양인가?”일 것입니다. 현실적 지위와 소유가 볼품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기도를 뜨겁게 오래 했는데도 환난이 그치지 않으니 믿음이 너무 약한 것 아닌가라는 불평도 아닙니다... 요한복음(88) 대제사장적 기도(4) “하나 되게 하소서”
2018년 10월 27일자 경향신문은 탈북민 1호 통일학 박사 주성현 씨를 소개하며 그에게서 들은 현재진행형인 분단이야기를 소개했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한국인 다수가 ‘분단’에 내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제는 북한이 미사일을 수없이 쏴고 전투기를 백 수십대를 띄워도, 대북제재 때문에 북한 주민이 굶어죽는다는 뉴스를 봐도, 내 일로 느끼지 않는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