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골이 너무 깊다. 우리 사회는 아예 분열이 고질병 된 것 같다. 본문에도 심각하게 분열된 고질병 증세가 나타난다. 늘 그랬듯이 기적의 결과는 분열, 유대인들은 나사로의 부활이라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적을 체험하고도 반응이 엇갈린다. 사도 요한은 먼저 믿음으로 반응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45절). 나사로 부활 현장에 있던 유대인의 일부지만 요한은 그들의 수가 많았다고 했다... 요한복음(60) 나사로야 나오라
예수님이 큰소리로 외치신다. “나사로야 나오라”, 이 한 마디에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44절), 부활의 기적이 일어났다. 예수님의 ‘나오라’는 명령 때문인데 그 과정이 은혜롭다... 요한복음(59) 예수께서 우셨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으로 죽음이라는 주제를 부활로 바꾸시더니 갑자기 분위기가 다시 장례식 분위기로 돌아간다. 죽음이라는 현실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35절), KJV으로 보면 “Jesus wept”, 성경 구절 가운데 가장 짧은 절이다. 우실 분이 아니다. 죄를 지은 분도 아니고, 약한 분도 아니다. 하나님이시고, .. 요한복음(58)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 장례는 이미 끝이 났다. 중동지역은 기온이 높기 때문에 흔히 사망한 바로 그날 굴속에 매장하는데 이미 나흘, 나사로는 완전히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족인 두 자매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 때문인지 많은 유대인들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장례식 내내 중동 여인들 특유의 애곡 소리가 집안을 울렸을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중대 선언을 하셨다. “나는 부활이.. 거룩해질 수 있는 비결
일부 잘못된 사람들 때문에 욕을 먹고 있긴 하지만 기독교가 소외층과 빈곤층에 대한 섬김을 가장 강조하는 이타적 종교임은 자타가 인정합니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선행과 구제가 마치 기독교의 핵심인양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깊은 의미를 모르는 외부인이 볼 때는 그럴 수 있다지만 간혹 신자들마저 그럽니다... 요한복음(57) 나사로가 죽다
11장에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일곱 번째 표적,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 공생애의 클라이맥스, 이 기적은 그 누구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든 가장 큰 기적(Biggest Event)였다. 그전에도 예수님이 사람을 살리신 적은 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고(눅7:11-17), 마가복음 5장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가장 축복 받은 죽음
우리 모두는 반드시 죽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신자에겐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광스런 구원의 완성으로 가는 첫 걸음입니다. 비로소 진정으로 복된 인생이 시작됩니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던 이 땅을 벗어나 영원하고 완전한 빛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요한복음(56) 신성모독
류 윌리스(Lew Wallace) 장군은 자기 친구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고 한다. 과학 문명이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시대에 아직도 케케묵은 성경을 믿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 나쁘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장군이자, 언론인, 그리고 저술가였던 윌리스는 성경의 불합리성과 모순을 지적하기 위해 성경을 손에 잡았고, 반박문을 쓰기 위해 성경 공부를 시작했다... 요한복음(55)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나만 양의 문이다” “나만 선한 목자다”라는 말씀에 발끈한 사람들, 다시 분쟁이 일어난다. 귀신 들려 미쳤다며 그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반응이 다수, 반면에 “귀신 들렸다면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하냐” 반론을 펴는 반응은 단수 또는 극히 소수였던 것 같다(20-21절). 사실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반응은 요한복음서에 계속 있었던 것이다. 귀신 들려 미쳤다는 것뿐만 아니라 유대인들.. 요한복음(54) “나는 선한 목자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 로이(רֹעִי)’, 일반적으로 이렇게 신앙고백을 할 때 금방 연상되는 분위기는 목가적, 전원적 분위기다. 그러나 성경에서 목자와 양의 비유를 사용할 때의 분위기는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다. 구약에서의 목자는 대부분 왕이었는데 왕은 백성들의 생존을 책임져야 했다. 또 외부 침략이나 경제적인 위기 때는 앞장서서 현장에서 상황을 지휘하.. 요한복음(53) 나는 양의 문이라”
요한복음 10장은 9장에 대한 주석이다. 율법의 핵심은 놓치고 껍데기만 붙들고 있는 사람들, 자신들도 생명에 이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까지 생명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람들, 그들로 인해 예수께서 양과 우리, 그리고 목자에 초점 맞춰 주신 말씀이다. 구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인 하나님을 목자로, 백성을 양으로 비유하며 자신의 구원자 되심을 설명하셨다... 정말로 충만하게 살 수 있는 법
신자가 충만해지는 첫째 걸음은 충만하신 하나님이 충만한 채로 우리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는 것입니다. 내 후패한 겉 사람으로 인해 그분의 충만함에 어딘가 결핍하다고 여겨지면 바로 사단의 꾐에 넘어간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속사람의 힘이 빠질 때는 충만하신 성령의 충만함으로 다시 충만케 해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물론 그전에 자신의 비움이 완전한지 점검하면서 말입니다... 요한복음(52) “내가 믿나이다”
인간으로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운명으로 태어난 사람, 마치 피할 수 없는 결말 같은 불행하고 비참한 운명으로 태어난 것 같은 남자, 그런데 그는 운명을 저주하거나 실망하며 좌절하지 않고 살아왔다. 왜 원망이 없었을까? 하늘도 무심하다는 생각이 한 번도 없었을까? 모르긴 해도 처절한 절규와 남모르는 눈물과 한숨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었을 수도 있다. 그만큼 힘겨운 운명으로 살아왔다... 얽매이기 쉬운 죄란?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1,2).. 요한복음(51) 고군분투
본문에 오랜 세월 볼 수 없어서 단순하게 살았던 주인공이 등장한다. 눈을 떠보니 신세계, 진실을 보게 되고, 자유를 얻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갑자기 삶이 너무 복잡하다. 이웃과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부모와의 관계도 틀어지게 됐다. 불편하고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소리라도 질러야 할만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 사람의 단순하게 사는 모습이 압권이다. 초점을 예수께 .. 정금 같은 믿음이란?
졸지에 엄청난 환난을 당한 욥은 하나님께 그 이유라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원통함을 발설하고 내 마음의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니 나를 정죄하지 마옵시고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나로 알게 하옵소서.”(욥10:2) 세 친구와의 논쟁도 서로 핀트가 어긋나기만 했고 젊은 엘리후까지 가담한 토론은 결론이 나질 않았습니다... 요한복음(50) 인생을 건 믿음의 고백
한 번밖에 없는 인생, 누구나 ‘생명의 길’을 갈 수도 있고, ‘죽음의 길’을 갈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본문의 주인공도 그랬다. 맹인이었다가 눈을 뜬 이름 모를 사람, 실로암에서 눈을 떴다. 기적을 체험한 것이다. 그런데 축하는커녕 사람들이 의심하고 출교(excommunication)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이 사람은 끝까지 자기에게 일어난 은혜의 사건을 붙.. 요한복음(49)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다
영적 맹인들을 피해 성전을 빠져나온 예수께서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던 육적 맹인 한 사람을 만나 그의 눈을 뜨게 해주신다. 9장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8장 12절의 주석과도 같은 삽화다. 주석가 레온 모리스(Morris)는 “4복음서에 예수님의 치유 중 눈먼 자의 치유 기사가 가장 많다”(마9:27-31, 12:22이하, 15:30-31, 21:14; 막8:22-26, 10:46-5.. 반드시 갖추어야 할 믿음의 가장 기본(2)
다윗이 “나의 완전함에 행하고 요동치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도덕적 무결점을 자랑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언제 어디서 어떤 형편에 있어도 오직 궁극적인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만 끝까지 붙들며 그분 앞에 겸손히 엎드린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성실함보다는 당신께서 계획하신 영광의 자리에까지 자기를 반드시 이끌어주실 그분의 성실함을 바라본 것이었습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지녀야 할 믿.. 요한복음(48)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다!
예수께서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을 하시자 속이 뒤집힌 유대인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사마리아 사람’, ‘귀신 들렸다’라는 등 온갖 욕설로 예수님을 공격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내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너희는 지금 나를 무시하지만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하나님은 내 아버지”시라며 “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다”고 선언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