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희우 목사
    요한복음(60) 나사로야 나오라
    예수님이 큰소리로 외치신다. “나사로야 나오라”, 이 한 마디에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44절), 부활의 기적이 일어났다. 예수님의 ‘나오라’는 명령 때문인데 그 과정이 은혜롭다...
  • 이희우 목사
    요한복음(59) 예수께서 우셨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으로 죽음이라는 주제를 부활로 바꾸시더니 갑자기 분위기가 다시 장례식 분위기로 돌아간다. 죽음이라는 현실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35절), KJV으로 보면 “Jesus wept”, 성경 구절 가운데 가장 짧은 절이다. 우실 분이 아니다. 죄를 지은 분도 아니고, 약한 분도 아니다. 하나님이시고, ..
  • 이희우 목사
    요한복음(58)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 장례는 이미 끝이 났다. 중동지역은 기온이 높기 때문에 흔히 사망한 바로 그날 굴속에 매장하는데 이미 나흘, 나사로는 완전히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족인 두 자매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 때문인지 많은 유대인들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장례식 내내 중동 여인들 특유의 애곡 소리가 집안을 울렸을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중대 선언을 하셨다. “나는 부활이..
  • 이희우 목사
    요한복음(57) 나사로가 죽다
    11장에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일곱 번째 표적,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 공생애의 클라이맥스, 이 기적은 그 누구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든 가장 큰 기적(Biggest Event)였다. 그전에도 예수님이 사람을 살리신 적은 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고(눅7:11-17), 마가복음 5장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 이희우 목사
    요한복음(56) 신성모독
    류 윌리스(Lew Wallace) 장군은 자기 친구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고 한다. 과학 문명이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시대에 아직도 케케묵은 성경을 믿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 나쁘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장군이자, 언론인, 그리고 저술가였던 윌리스는 성경의 불합리성과 모순을 지적하기 위해 성경을 손에 잡았고, 반박문을 쓰기 위해 성경 공부를 시작했다...
  • 이희우 목사
    요한복음(55)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나만 양의 문이다” “나만 선한 목자다”라는 말씀에 발끈한 사람들, 다시 분쟁이 일어난다. 귀신 들려 미쳤다며 그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반응이 다수, 반면에 “귀신 들렸다면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하냐” 반론을 펴는 반응은 단수 또는 극히 소수였던 것 같다(20-21절). 사실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반응은 요한복음서에 계속 있었던 것이다. 귀신 들려 미쳤다는 것뿐만 아니라 유대인들..
  • 이희우 목사
    요한복음(54) “나는 선한 목자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 로이(רֹעִי)’, 일반적으로 이렇게 신앙고백을 할 때 금방 연상되는 분위기는 목가적, 전원적 분위기다. 그러나 성경에서 목자와 양의 비유를 사용할 때의 분위기는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다. 구약에서의 목자는 대부분 왕이었는데 왕은 백성들의 생존을 책임져야 했다. 또 외부 침략이나 경제적인 위기 때는 앞장서서 현장에서 상황을 지휘하..
  • 이희우 목사
    요한복음(53) 나는 양의 문이라”
    요한복음 10장은 9장에 대한 주석이다. 율법의 핵심은 놓치고 껍데기만 붙들고 있는 사람들, 자신들도 생명에 이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까지 생명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람들, 그들로 인해 예수께서 양과 우리, 그리고 목자에 초점 맞춰 주신 말씀이다. 구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인 하나님을 목자로, 백성을 양으로 비유하며 자신의 구원자 되심을 설명하셨다...
  • 이희우 목사
    요한복음(52) “내가 믿나이다”
    인간으로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운명으로 태어난 사람, 마치 피할 수 없는 결말 같은 불행하고 비참한 운명으로 태어난 것 같은 남자, 그런데 그는 운명을 저주하거나 실망하며 좌절하지 않고 살아왔다. 왜 원망이 없었을까? 하늘도 무심하다는 생각이 한 번도 없었을까? 모르긴 해도 처절한 절규와 남모르는 눈물과 한숨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었을 수도 있다. 그만큼 힘겨운 운명으로 살아왔다...
  • 이희우 목사
    요한복음(51) 고군분투
    본문에 오랜 세월 볼 수 없어서 단순하게 살았던 주인공이 등장한다. 눈을 떠보니 신세계, 진실을 보게 되고, 자유를 얻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갑자기 삶이 너무 복잡하다. 이웃과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부모와의 관계도 틀어지게 됐다. 불편하고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소리라도 질러야 할만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 사람의 단순하게 사는 모습이 압권이다. 초점을 예수께 ..
  • 이희우 목사
    요한복음(50) 인생을 건 믿음의 고백
    한 번밖에 없는 인생, 누구나 ‘생명의 길’을 갈 수도 있고, ‘죽음의 길’을 갈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본문의 주인공도 그랬다. 맹인이었다가 눈을 뜬 이름 모를 사람, 실로암에서 눈을 떴다. 기적을 체험한 것이다. 그런데 축하는커녕 사람들이 의심하고 출교(excommunication)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이 사람은 끝까지 자기에게 일어난 은혜의 사건을 붙..
  • 이희우 목사
    요한복음(49)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다
    영적 맹인들을 피해 성전을 빠져나온 예수께서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던 육적 맹인 한 사람을 만나 그의 눈을 뜨게 해주신다. 9장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8장 12절의 주석과도 같은 삽화다. 주석가 레온 모리스(Morris)는 “4복음서에 예수님의 치유 중 눈먼 자의 치유 기사가 가장 많다”(마9:27-31, 12:22이하, 15:30-31, 21:14; 막8:22-26, 10: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