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구 박사
    파독(派獨) 간호사
    파독(派獨) 간호사가 올해로 꼭 60주년이 되었다. 파독 간호사들은 병원 내 환자의 간호는 물론이고, 간호 보조와 허드렛일까지 감당했다. 그래서 한국의 간호사들을 일컬어 ‘한국의 천사들’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그 무렵 파독(派獨) 광부들은 지하 1,000m의 지하 갱도에 들어가 비지땀을 쏟았다...
  • 정성구 박사
    샤크(Shark)는 쇼크(Shock)였다
    샤크(Shark)가 쇼크(Shock)를 주었다. 요즘 상어 한 마리가 부산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놀라운 볼거리를 주고 있다. 말 그대로 쇼킹했었다. 먼바다에 서식하고 있어야 할 커다란 상어 한 마리가 부산의 새로운 북항 친수 공원에 출몰했었다. 말 그대로 부산시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수조 원의 관광 홍보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 상어를 보기 위해 지금 그 친수 공원에는 무려 오십..
  • 정성구 박사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는 순교자들의 신앙
    오래전 재미 동포 리차드 김(Richard Kim)의 소설 ‘순교자’가 있었다. 이 소설은 허구가 아니고, 6.25때 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루고 있다. 10여 명의 목사들이 인민군에게 끌려가서 총살로 순교 당했다는 것으로, 내용을 요약하면, 인민군에게 끌려가다가 총살당한 목사님들은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었다...
  • 정성구 박사
    칼빈주의의 로마, 데브레첸
    헝가리의 데브레첸을, ‘칼빈주의의 로마’라고 한다. 또 다른 별칭으로 데브레첸은 ‘헝가리의 제네바’라고 불리 운다. 특히 데브레첸 개혁주의 대학교(Debrecen Reformed University)는 1538년에 설립된 것으로, 칼빈이 ‘제네바 아카데미’를 세운 1559년보다 21년이 앞서 있다. 헝가리에는 데브레첸 개혁주의 대학교 말고도, 1531년에 세워진 사로스파탁 개혁주의 대학(Th..
  • 정성구 박사
    우리는 ‘백성’이 아니고, ‘국민’이다
    우리는 ‘백성’이 아니고, ‘국민’이다. 우리나라가 오늘날처럼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어, 우리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한 것은 오래지 않다. 본래 우리나라는 500년 동안 왕조 국가였기에, 선거가 무엇인지, 투표가 무엇인지 모르는 백성들이었다...
  • 정성구 박사
    홍수 심판과 노아 방주
    오래 전, 필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헤리스버그 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었다. 집회가 끝난 후, 담임목사님은 랑케스트 근방에 있는 큰 극장으로 나를 데려갔다. Sight & Sound Theatres였다. 이 극장은 주로 성경의 이야기를 대형 무대와 실제 동물과 거대한 세트를 통해서 성경의 스토리를 입체적으로 실감 나게 공연하는, 기독교 선교 극장이다. 그날 내가 본 것은 「노아(Noah..
  • 정성구 박사
    남궁 혁(南宮 爀)의 꿈
    남궁 혁! 대부분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그를 잘 모른다. 물론 일반인들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분은 거의 없다. 하지만 남궁 혁 박사의 족적은 한국의 신학사나, 재무 역사에 큰 일을 감당했던 거목이었다. 남궁 혁 박사는 최초의 신학박사이자, 최초로 평양신학교의 교수가 되신 분이다...
  • 정성구 박사
    이수일과 심순애
    이수일과 심순애는 소설 「장한몽」의 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일본 소설을 ‘조중환’이 한국적 배경으로 번안한 신파 소설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1913년부터 매일신문에 연재되었고, 단행본으로도 나왔다. 후일, 이 소설은 연극 무대에 올랐고 영화로도 상영되었다고 한다. 그 시절 이 작품은 가장 인기 있었고, 장안의 화제였다...
  • 정성구 박사
    공실(空室) 공화국
    우리나라는 어쩌다가 공실(空室) 공화국이 되었을까? 참으로 걱정이다. 이 지경이 된 것은 정치꾼들의 책임이 가장 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무조건 아파트와 상가건물을 짓고 둘레길과 출렁다리를 놓고, 신도시를 만들어 다음 선거를 준비하고 재선을 노리는 것이 우선이다. 지방 자치단체장들은 국가가 빚더미에 있는 것은 관심 없고, 국가로부터 막대한 예산을 선거용으로 받아서 이른바 ‘혁신 도시’를 지..
  • 정성구 박사
    기도의 불씨를 살리자
    한국교회는 기도의 불이 꺼졌다! 얼마 전 잘 알려진 기도원에 가서 집회를 인도했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기도원 직원을 포함해서 고작 20여 명만 앉아 있었다. 정말 썰렁했다. 필자는 1980년대 천마산 기도원을 비롯해서 몇몇 기도원 집회를 인도했었다. 그때는 수천 명의 성도들이 기도원에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뤘다. 당시는 교회가 부흥의 시기였고, 정치적 불안도 있었고, 경제적 갈구도 많았다..
  • 정성구 박사
    황금천(黃金泉)
    나는 1969년 고된 광주 육군 보병학교를 졸업했었다. 그리고 중위로 임관하여 첫 보직으로 26사단 76연대의 군목이 되었다. 당시 연대장은 육사 10기생인 김창일 대령이었다. 나는 전입 신고를 위해 김창일 대령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앞에서 신고를 하려는데, 연대장님은 내게 “목사님이 무슨 신고를...” 하면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김창일 대령은 작은 키에 뚱뚱했지만, 군에서는 알려진 작전..
  • 정성구 박사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나는 글을 쓸 때나, 설교를 준비할 때, 언제나 성경 말씀을 통해 영적 체험을 한다. 이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가슴에 먼저 불을 질러야 설교가 나온다는 것이다. 요즘 목사들이 Gemini, ChatGTP의 도움으로 설교한다고 한다. 노력을 덜 드리고도 더 논리적으로 깔끔하게 설교한다고 한다. 그리고 둘러대는 말이 ‘매우 효율적으로 비서 하나 더 두는 격이다’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