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년 10월 31일 부패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면죄부(면벌부, 大赦-lndulgentia) 대량 판매를 지적하고, 비텐베르그 교회 문에 95개 조 반박문을 게시하면서 종교개혁, 교회개혁 운동이 일어났다. 이 종교개혁 운동이 17세기 초까지 계속 이어지며 중세의 교권 통치 시대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역할을 하고 중세와 근세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물론 종교개혁 운동 이전에도 교회 개혁 .. 요한복음(41) 내게로 와서 마시라
예레미야가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렘2:13)라는 표현을 했는데 터진 웅덩이에 열심히 물을 붓고 있다면 그건 어리석은 짓,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7-38) 예수님이 선포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물이 귀한 중동지역 사람들에게만 솔깃한 말씀인가? 우리 현대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초막절 마지막 날이었다고 했다. .. 요한복음(40) 그리스도 아니냐?
근래에 드라마나 영화에서 기독교를 지나치게 희화화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부정적인 추세이고, 비난도 점점 더 노골적이다. 그런데 성전에서의 첫 번째 대화(Dialog)의 핵심이 “하늘로부터 온 교훈”이 되자 난리가 났었다. 무엇을 어떤 제목으로 가르치셨는지는 요한이 밝히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이 성전에서 “하늘로부터 온 교훈”이라.. 요한복음(39)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다
한때 이런 조크가 떠돌았다. “아들 워디 대학 갔대유?” “예, 화천대유” “그런 대학도 있남?” “입학금 500만 원 내면 졸업할 땐 500억 준대유” “다 좋은디 그 대학 나오면 깜빵간대면서유” “괜찮아유~ 대법관한테 50억 주면 무죄로 나온대유” 별의별 뉴스가 떠돌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는 국민들이 많다. 경우가 다르지만 본문에도 화난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의 분노는 대상이 예수님이다. .. 요한복음(38)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오병이어의 기적 후 군중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지만 예수님의 기대와 다른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에 돌아서고, 반대 세력도 늘어났다. 요한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한다”(1절)는 말로 7장을 시작한다. 7장부터는 예수님의 사역 때마다 반대와 저항이 있었던 것이 거론된다. 그러면서 반대자나 적대자들의 모든 이론이나 주장에 ‘예수님은 메시아’라는 논점에서 충분한 답변이 주어졌.. 요한복음(37) “너희도 가려느냐?”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군중들에게 예수님은 영웅이셨다. 그들은 예수님이 떠나신 걸 알고 즉시 배 타고 가버나움으로 좇아갔다. 예수님의 수상보행(水上步行), 광풍 부는 갈릴리 바다를 걸어오시는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임금 삼고 싶었다. 그런데 가버나움 회당에서 만난 예수님은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27절)면서 그들의 입장.. 요한복음(36) “나는 생명의 떡이니” (2)
“나는 생명의 떡이니”, 예수님의 이 자기 선언은 마치 어둠 속을 비추는 등대이자, 빽빽한 밀림 속에서 손에 쥐어진 지도나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우리 마음의 혼란을 평정케 하기에 충분한 말씀, 이 선언은 “내 마음은 호수”라는 말처럼 힘이 있는 은유이기도 하다. “내 마음은 호수”라 하면 마음에 광활한 바다가 열리면서 편안해지지 않나?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라는 말은 그 정도가 아니라 .. 요한복음(35) “나는 생명의 떡이니” (1)
예수님은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27절)고 하셨다. ‘썩을 양식’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두 양식이 대조를 이룬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것이 썩을 양식을 주려고 하신 일은 아니다. 자신의 진면목을 알리시려는 것인데 무리는 예수님의 진면목을 알려고 하기보다 메시아가 오시면 다시 한 번 만나를 내려 줄 것이라는 고정된 메시아관에 맞춘 기대감으로 찾.. 요한복음(34)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6장에 예수님의 기적이 두 번 연이어 나온다. 2만 명 정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은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로 먹였던 사건을 연상케 하는 기적이고, 이어서 나오는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 위를 걸으시는 기적은 홍해를 맨땅 같이 걸어간 모세의 출애굽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기적이다... 요한복음(33) 오병이어의 기적
예수님은 오병이어(五餠二魚, The Feeding of the 5,000), 즉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아이들과 여자까지 합해 약 2만 명으로 추정되는 무리에게 원대로 주시는 기적을 행하셨다. 남은 것도 12바구니, ‘불가능한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이랄까? 마치 광야시절 ‘만나’를 연상하게 하는 표적 이야기(sign-.. 요한복음(32)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과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은 전혀 다를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은 백과사전식 정보만 알 뿐 그 사람의 실재와 내면을 알지 못하면서 아주 잘 안다고 착각하며 산다. 유대인들의 예수님에 대한 판단과 평가도 그랬다. 그들은 예수님을 오해하고 믿지 않았다. 믿음이 행복의 근원인데 유대 땅에서 공생애를 산 최고 인기스타이셨지만 그저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알뿐, 의심하.. 요한복음(31) 증언이 있다
38년 된 병자를 고쳐준 것, 잘한 일인데 고침받은 사람이 밀고하는 바람에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어겼다며 박해하고,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감히 하나님과 하나라고 신성모독한다며 아예 죽이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상황 속에서도 당당하시다. ‘증언,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