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로 타락하긴 했어도 사람은 의외로 의롭게 행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특별히 나라가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에 구차하게 항복하여 목숨을 연명하는 것은 너무 비겁하고 또 적국의 노예가 되어 수모 멸시 당하느니 끝까지 결사 항전하겠다고 나섭니다... 번제만이 신자의 생명이다
“내가 건축하고자 하는 성전은 크니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들보다 크심이라”(대하2:5) 솔로몬이 언뜻 창조주 유일신보다 다신교를 믿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는 비록 정략적인 목적이었어도 여러 이방 여인을 후궁으로 두었고 또 그녀들로 각 나라의 신을 섬기도록 허용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오염시킨 책임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 말기에 남긴 정말로 심오한 책 전도.. 환난을 겪지 않는 최고비결
바울 일행은 비시디아 안디옥의 박해를 피해 이고니온으로, 또 이고니온에서도 핍박을 당해 루스드라로 옮겼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까지) 와서 무리를 충동”(19a)했고 그에 부화뇌동한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을 돌로 쳤다. 바울이 더 이상 가르치지 못하게 크게 위협을 준 것이 아니다. 정말로 죽도록 쳤고 실제로 죽은 줄 알고 시외의 한적한 곳에 내다버릴 정도였다... 불신 이웃을 제대로 전도하려면?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15:14) 제가 처음 신자가 되었을 때에 제 믿음을 더욱 견고케 해준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바울의 구원 여정이었습니다. 열렬한 안티크리스천이었던 바울이 가장 열렬한 옹호자가 되었고 또 그가 기독교 교리의 근간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따져보면 그가 완전히 예수로 인해 거듭났고 예..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도 있다니…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시120:5-7) 시인은 환난 중에 구원해달라고 부르짖었더니 그대로 응답되었습니다.(1절) 그런데 그 환난이 발생한 근거와 환난이 진행되는 모습이 오늘날 우리가 건짐받기 위해 기도하는 고난의 그것들과는 사뭇 다릅니.. 구원 받을 믿음을 볼 수 있는가?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행14:9) 바울의 설교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큰 부흥이 일어나자 유대인들이 관리들을 동원해 박해하며 추방했다. 성령의 권능에 사로잡힌 사도들이 현실의 고난과 박해를 두려워할 리는 없었다. 복음의 생명력도 세상 권력의 훼방에 주춤할 만큼 무력하지도 않다. 인근의 이고니온과 루스드라로 흩어졌으나 그곳에서도 전도의 열매들이 많이 .. 예수님이 행하신 마음 치유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신 후에 갈릴리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침으로써 본격적으로 공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고향 나사렛에 이르자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서”(16절) 이사야서의 상기 말씀을 펼쳐서 읽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21절)고 말했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므로 고향 사람들 앞에서 당신께서 바로 그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참 믿음이다
아도니야가 스스로 다윗을 이어서 왕이 되려했던 시도는 하루도 가지 못해 실패했습니다. 반란 소식을 들은 선지자 나단은 밧세바에게 빨리 다윗 왕을 만나 그가 이전에 하나님과 그녀에게 행한 맹세를 지킬 것을 촉구하라고 충고해주었습니다. 다윗은 다시 밧세바에게 그녀의 소생인 솔로몬으로 왕위를 잇게 하겠다고 맹세해주었습니다. 다윗의 왕위이양 절차는 간단하게 끝났으나 아도니야의 풍성한 잔치와 비교해보..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려면?
한국교인들의 치명적인 단점은 성경을 정작 그 본문이 말하는 것과도 무관하게 자기 멋대로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데는 물론 가르치는 자들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신자들 스스로도 본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성경을 읽기 때문입니다...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신은 같은가?
기독교가 이슬람에게 배타적이라고 지적하고 싶은 사람들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믿는 하나님은 같은 분인데 왜 이슬람만 비판하느냐고 반발합니다. 이슬람도 구약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므로 일부 타당하게 보이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 주님의 십자가 구속사건, 삼위일체 등을 인정하지 않으며 구약 인물이나 내용을 다르게 해석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비판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 고난 후에 정말로 달라졌는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시119:71-72) 많은 신자들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는 본 시편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의 고난 후에 유익하게 된 모습은 성경이 말하는 바와 많이 다릅니다... 자기 마음을 속이는 신자들
남왕국 유다는 결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마지막 시드기야 왕은 자기 아들들이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후에 정복자들로부터 자기 두 눈마저 빠지는 형벌을 받고는 장님이 되어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의 망막과 뇌리에 마지막으로 기억된 것은 자식들의 참혹한 죽음이었고 그 후로 어떤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지난 십년 간 하나님의 메시지에는 눈과 귀를 가린 채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