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스타벅스에서 커피에 밀크를 타는 동안이었다. 한 백인 아저씨가 내 옆에 서있기에 평소대로 전도를 했더니 좀 예민한 인상에 걸맞게 피식 웃으면서 떠드는 말이, 자기도 믿고는 싶지만 생각해 보라고…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냐고?… 사람이 상식에 의해서 살아야 되지 않겠냐고? 내게 평소 심중에 삭히던 말을 하듯 호소성 항변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 또한 답답하다는 듯 예수가 곧 하나님이라구, 예수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므로 예수의 죽음은 곧 하나님 자신이 인간을 위해 돌아가신 것이라고,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의 신비라고, 그것이 아가페의 사랑이라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전했다. 그러자 그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한 번 생각해 보겠다고 진지하게 말하며 나갔다.
그 후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 여호와의 증인 소속의 어떤 청년에게도 난 이 아저씨의 예를 떠올리며 설명을 하였던 기억이 난다. 결국 전도를 하는 중에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 없이는 십자가의 대속도 불완전한 설명이 될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또 한 번은 전철에서 옆에 앉은 점쟎은 백인 아주머니가 자기는 장로교인이라고 하면서 문득 내게 삼위일체를 믿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물론이란 답을 들은 그녀가 모호한 표정을 짓더니 자신은 아직도 확실히 삼위일체가 이해가 안간다고 하는 것이었다. 순간 안도와 반가운 기분도 잠시, 가슴이 철렁 내려 앉으며 전도 대상자가 비단 비기독교인들 뿐만이 아니라 크리스찬 써클 내에서도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늦가을 오후였다. 쇼핑몰에서 밤 늦게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평소처럼 전도를 하던중 한 백인 할머니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하였다. 대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밝힘으로써 복음을 듣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럴때면 나는 당신 유대인들이 구약을 잘 간수해 주어서 고맙다고 칭찬을 하며 반갑게 반기고 서두를 꺼낸다. 그럴때면 이들의 경계가 다소 풀린다. 그 틈을 타 구약의 모든 구절이 주님의 오심을 예언한 사실을 아느냐며 미가서나 이사야서를 거론하면 이들은 모두 이런 이름을 들은 적도 읽은 적도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나는 하나님은 유대인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분이며 우리는 혈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에 의해서 거듭나야 한다고 요한복음의 메시지를 응용한다. 그리고 예수도 유대인이었으며 사도 바울도 유대인이었다고 말하며 바울의 회심과 유대민족에 대한 예언을 말해준다.
그런데 이 유대인 할머니는 아주 견고하게 자기 지식으로 무장이 된 이였다. 그녀는 자신을 역사학을 전공한 교수라고 소개하며 아주 교만하고 자신있는 표정으로 말하길, 자기가 유대교와 기독교의 생성과정을 엄밀히 분석 연구했는데 기독교는 정통성 없이 제멋대로 여기저기서 갖다 붙여 만든 종교라는 것이었다.
구약에서도 유대교의 토라만이 진짜이고 나머지는 다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기저기서 꿰맞춘 인간의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비상처방으로 질세라 힘을 주어 당신이 신학과 영성에 대해서 얼마나 아느냐며 하나님의 섭리는 역사를 초월한다. 성경이 정경화되기 까지는 역사적으로 합당하게 동의된 과정이 있어왔다고 전했다.
그러자 이 할머니는 별안간 귀를 틀어막으며 당신은 크리스찬들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유대인들을 학대했는지 아느냐고 트라우마를 앓는 환자처럼 소리를 쳤다. 홀로코스트란 단어를 입에 올리며…
잠시 말을 잃은 나는 천천히 위로조로 십자군이나 나치의 만행은 기독교의 가르침에 전혀 반하는, 기독교란 이름을 부당하게 사용한 사탄의 역사였음을 상기시키며 제발 로마서 8 장을 읽어 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 얼마전 뉴욕에서 개최된 유대교 랍비와 코리안 목사들과의 은혜로운 미팅을 소개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달래려 애를썼다. 버스가 오자 우리는 같은 버스에 올라타게 되었다.
난 뒤미쳐 버스에 올라 버스비를 지불하였다. 그런 후 뒷 자리에 먼저 앉은 그녀가 날 올려다보는 표정에 어딘지 아까와는 다른 호감어린 미소가 서려있음을 슬쩍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난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는 대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심경으로 또 그녀에게 다가가 이메일 주소를 달라고 하자 그녀는 웃으며 보기좋게 거절하였다.
하여 난 그녀에게 “갓 블레스 유!” 인사를 하며 내렸던 것이다. 그 다음 날 아침이었다. 일찍 아파트 단지를 걷던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기에 평소와는 달리 처음으로 혼자 주님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걷고 있었다. 그때 어떤 할아버지가 맞은 편에서 조깅을 하며 내 쪽으로 달려오면서 괜찮냐고 외치듯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테니스 코트 앞의 한가한 파킹장으로 꺾어져 맨손 체조를 준비하며 “갓 블레스 유!”라고 그 명랑한 할아버지에게 외쳤다. 그러자 그는 밝은 기색으로 “아이 엠 쥬이시”라고 큰 소리로 화답했다. 내 입언저리에 나도 모르게 묘한 웃음이 감돌았다. 묘하지만 안타까움이 배로 동반된…
주여, 만남을 허락하신 모든 이들의 영혼을 축복하시고 구원의 반열에 들게하소서!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4~15)
박현숙 목사(프린스턴미션, 인터넷 선교 사역자)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