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
소강석 목사

“상처를 주께 가져오면 꽃이 되어요.
눈물을 가져오면 진주가 되고요.“

15일 늦은 밤, 총선 결과를 보며 “아쉽게 낙선한 분들은 얼마나 상처가 클까”하는 생각해 봤습니다. 우선 우리교회에서 출마하신 분들도 여야를 막론하고 낙선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선된 분들보다 낙선자들에게 더 많은 전화를 돌려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쓴 “꽃과 예수”라는 시를 읽어봤습니다.

“너의 상처를 내게로 가져오면 꽃이 되고/ 너의 눈물을 내게로 가져오면 진주가 되고/ 너의 한숨을 내게로 가져오면 노래가 되리니/ 아무리 힘들어도 너를 버리지 마라/ 피투성이가 되었더라도/ 너를 끌어안고 내게로 오라/ 세상이 너를 버렸을지라도/ 나는 너를 꽃처럼 껴안고…하략…”

시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낙선자들이 자신의 상처를 예수님께 가져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 눈물과 한숨을 예수님께 가져가면 꽃이 되고 진주가 되고 노래가 될 텐데…”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특히 저는 기독자유통일당의 결과를 보고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4년 전에는 제가 기독자유당을 직·간접적으로 도왔습니다. 왜냐면 보수정권도 한국교회에 대한 목소리를 듣지 않고 할랄식품산업이나 종교소득과 세법안을 추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치관과 세계관을 실현할 정당과 국회의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한국교회가 너무 많은 정치적 리스크를 입었기 때문에 그때의 상황과는 달랐습니다. 지금의 정치적 지형, 기후, 바람의 방향을 살펴볼 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는 것과 같지요. 만일 병법의 대가인 손자가 한국교회의 지도자였다면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고 말리고 또 말렸을 것입니다. 물론 신앙적으로만 보면 패배했다고 할 순 없죠.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한국교회를 지키기 위한 동기로 노력했다면 말입니다.

저는 앞장서서 일했던 그분들의 신앙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포지션에 있어서 교회 위상이 추락되고 이미지와 브랜드가 실추됐다는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더구나 한국교회는 코로나19 때문에 상처투성이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피투성이가 되었더라도 그 몸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면 주님께서는 여전히 꽃처럼 껴안아주신다는 저의 시구절이 참으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상처투성이, 피투성이가 된 한국교회가 자신을 끌어안고 주님 앞에 나아갈 때 꽃처럼 껴안아주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요즘 저는 코로나19를 맞으며 잠 못 이루는 밤을 더 많이 겪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한국교회를 염려하고 걱정할 뿐입니다. 제가 이따금씩 탈모방지를 위해 병원에가서 수면 마취를 하면서 두피 영양주사를 맞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취 상태에서도 제가 그대로 소리를 지른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한국교회여 일어나라. 아멘!” 오죽하면 몇 년 전 성대수술 후에 마취에서 깨어나는 중에도 주님을 부르짖고 교회를 향한 저의 사명을 외쳐댔겠습니까. 그러나 저도 한국교회를 사랑하고 염려하기 때문에 상처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꿈에서라도, 그 상처와 아픔을 주님께 가져가고 싶습니다.

꽃과 진주와 노래를 선물로 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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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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