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온누리교회를 개척한 故 하용조 목사의 생전 주요 설교를 요약해 [다시 읽는 명설교]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십자가의 뜻은 '수난과 고난'이다. 십자가는 잔인하며 무서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십자가의 고난을 짊어질 수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고난을 피하지 않고 받은 것이다. 자기 몸은 내어 준 것이다.
본문 27장 38절을 보면 예수님 옆에 두 강도가 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세 가지를 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형태는 같았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른 십자가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고난과 저주받은 인간의 고난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의 고난이 다름을 메시지를 통해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인류의 모습을 이 두 가지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두 강도는 죄인임이 확실했다. 둘 다 죄인이지만 한 사람은 구원 받은 자라면 또 한 사람은 구원을 요청하지 않아 구원 받지 못했다.
세 번째는 구원은 마지막 순간이라 할지라도 구원의 요청에 의해서 구원 받을 수 있다. 이때까지 어떻게 살았든지, 구원은 함부로 사람이 구원 받았다, 안 받았다라고 얘기할 수 없다. 하나님만이 알 수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영화에서 예수님이 절벽에 굴러 떨어져서 절뚝거리며 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는 장면과 병사들이 창으로 찔러 물과 피가 쏟아지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장면은 상상하기가 어려우니까 대충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고난의 깊이는 믿음의 깊이다. 현대인의 특징이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신앙의 본질은 내가 죽는 것,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첫 번째 왜 죄 없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져야 했는가. 두 번째는 인간의 폭력성과 야만성이다. 마치 마귀에 씌워진 것 같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자살폭탄테러에서 폭력성을 느낀다. 폭력의 뒤에는 사단의 세력이 존재한다. 포악한 권력에 집착하는 사람들, 그들의 눈에는 사람의 이성을 넘어 폭력의 젖어 있다.
요즘 자살이 판을 친다. 테러와 인터넷에서 자살을 한다. 자살, 폭력, 분열의 영이 이 땅을 지배하고 있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칼은 칼로 망하는 것이다. 정의나 믿음을 이름으로 폭력에 젖어 있다. 우리는 6.25 전쟁을 겪은 민족이다. 전쟁이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는 누구인가.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 분노하는 군중들인데 여기서 폭력에는 항상 조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도 거기에 동참이 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발견하게 되는 것은 폭력과 조롱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예수님의 얼굴이다. 동요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모든 세상에 짐을 짊어가는 어린양의 모습, 이것이 '고난터치'이다.
고난을 거부하면 순교할 수 없다. 순교는 첫 째로 고난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것이고, 두 번째 비폭력을 전제로 한다. 누가 고난을 원하는 자가 있겠는가? 하지만 고난을 이기는 방법은 고난을 피하지 않는 것이며, 죽음을 이기는 것은 죽음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은 기도이다. 보통 고난 속에 있는 자는 공포에 사로잡혀 기도하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의미를 잘 아셨기 때문에 기도로서 몸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폭력은 무섭지 않지만 비폭력이 무섭고, 미움에는 사랑이 이긴다. 오늘 기독교가 천박한 것은 고난이 없고, 비폭력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폭력 편에 손을 들어서 소리 지르고 고발을 한다. 우리는 죽음을 택할 지라도 세상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이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비참한 패배이며 패배를 통해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고난의 절정은 하나님의 외면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예수님께서 침묵하신 것은 나를 버렸다는 것이며, 예수님의 고난의 클라이맥스도 그 장면에 있다. 예수님은 과연 하나님을 버렸는가. 아니다 죄에 대해서 외면한 것이다.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받았다. 버림을 받았기에 부활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캄캄한 절망과 죽음 앞에 하나님도 안 계셨다. 고난 터치는 고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이 생긴 것이다.
끝으로 이사야 53장4~6절 말씀을 같이 보길 원한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