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삼
▲백석대 채영삼 교수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종교가 아니라'는, 이 유명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선포 자체는 전혀 흠이 없습니다. 당시 창궐하던 계몽주의적이고 낙관적인 인본주의자들에게 철퇴를 내린 복음 선언입니다. 당시 교회는 인본주의에 물들어, 예수를 선생 정도로, 윤리, 도덕 교사 정도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세속의 물결이 교회에 넘쳐 들었을 때, 목사님은, 기독교는 윤리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의 의를 힘입는 은혜의 종교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맞습니다. 바울의 이신칭의의 복음이 '율법의 행위'를 배척한 것처럼,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선포는, '인본주의적 기독교'를 배척한 것입니다. 두 분 모두, 그 시대에 교회를 대적한 원수들을 향해 복음의 빛을 비추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교회가 마주한 원수는 오히려 '행함이 없어도, 윤리, 도덕 따위가 없어도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오직믿음주의'의 면죄부를 주머니에 넣고, 마음껏 세속주의의 포도주에 취해도 좋다는 거짓 가르침, 그것입니다.

칼도 모두 용도가 있습니다. 수술 할 때 쓰는 칼이 있고, 음식할 때 쓰는 칼이 있고, 다 다릅니다. 아무 때나, 아무 칼이나 쓰지 않듯이, 복음의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종교가 아니라는 복음은, 그리스도를 "본받기만" 하려는 노력이 교회의 열심의 전부를 차지할 때, 힘있는 복음선포입니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정말, 그리스도를 '본받기만' 하려는 윤리적 열심 속에 있는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것도 없지 않습니까. 아니, 그것이 없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종교가 아닙니다. 도리어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받는" 종교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어, 그의 '의'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을 받는 종교입니다. 그의 '의'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명도 받아서, 그 생명 안에서 그의 생명, 그의 길을 살아내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받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받은 자가, 그의 의와 생명을 함께 받고 그래서 그를 본받아 그의 길을 따라가는 종교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으로 생명을 얻을 수 없지만, 그리스도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그 생명 안에서 그를 '본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께서 다른 많은 설교에서 성화를 강조하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스도를 받았는데, 그를 본 받음이 없는 자는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받은 것도 아닙니다."

죄가 계명을 이용해 우리를 속이듯이, 우리 죄가 좋은 것을 인하여 우리를 속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전통을 단순히 반복한다고 정통이 되지 않습니다. 학자들이여, 전통의 아름다운 것들을 꺼내, 그것이 이 시대의 교회에게 어떻게 약이 되고 떡이 되는지를 고민하기를. 그 시대를 끌어안고, 그 시대의 교회를 지키기 위해, 그 시대를 이기는 복음을 선포한 그들의 눈물과 고민과 고통 없이, 그 전통의 라벨을 다는 것만으로, 이 시대의 교회를 위한 복음 전파의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받아, 그 의와 생명, 부활과 십자가의 생명으로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진정 본받는 삶을 살아내는 이 시대의 교회가 되기를, 온전한 복음, 이 시대의 교회를 살리는 복음이 회복되기를. 살아있는 복음이, 교회를 온전히 살려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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