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고교 일학년 4월, 국어 시간 수업이 한창인데 창밖에는 눈이 내렸다. 아이들의 함성에 선생님은 수업을 중단했다. 그리고 칠판에 지우개로 다 지운 후 이렇게 적었다. “봄눈”

국어 선생님은 시인이셨다. 아마 내 짐작으로 30대 후반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봄눈을 바라보면서 시를 지어보라고 했다. 진해는 겨울에도 눈이 오지 않는 따뜻한 지역이다. 눈이 오면 모두 어린아이가 되었다. 그날 선생님은 자신이 지은 시를 칠판에 적었다. “봄눈, 오네”

소년 시절에는 이상기후가 희귀했다. 어제와 오늘, 갑자기 기상 이변 상황이 일어났다. 전문적인 기상 용어로 ‘절리저기압’으로 인해 한반도 상층에는 영하 40도, 지상엔 눈과 비, 천둥과 번개가 들이닥쳤다. 강원도 대관령과 정선, 화천에 10cm가량의 눈이 내렸다는 뉴스가 있었다. 벚꽃 위에 쌓인 눈을 뉴스에서 보았다.

내복을 다시 꺼내 입고 두툼한 외투를 걸쳤다. 지난 주간 초반에는 날씨가 무더워 반팔 티로 다니는 사람들도 보았다. 정오에서 해질 무릎까지 영상 20도를 넘었었다. 그랬는데 요란하고 변덕스러운 봄날을 보게 될 줄이야.

하루에도 사계절이 공존하는 듯한 날씨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변화무쌍함을 체감한다. 그런데 이러한 기후의 불확실성과 변덕스러움은 어쩐지 지금의 국제 정세나 국내 시국을 떠올리게 한다.

우크라이나와 중동 지역의 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강대국 간의 외교·경제적 갈등은 새로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뉴스는 시장과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국내 정치 또한 예측 불가한 흐름 속에서 혼란을 거듭한다. 이처럼 시시각각 바뀌는 정세를 바라보고 있다.

‘천변만화(遷變萬化)’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하늘의 변화처럼 만 가지 모습으로 변한다’는 이 말처럼 지금 세상은 어느 하나도 고정된 것이 없다. 자연도, 인간도, 사회도 끊임없이 변화하며 고정된 기준이나 질서 없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이러한 변화는 점점 더 예고 없이 닥쳐온다. 예전에는 어느 정도 흐름이나 조짐을 살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어렵다.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처럼, 크고 작은 사건들은 아무런 징후 없이 발생한다.

우리는 준비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즉각적인 대응을 강요받고, 개인이든 국가든 유연성과 지혜를 시험받는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혼란의 시기에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대응하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단순히 유연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변화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세는 언제나 불확실했고, 시대는 늘 격랑 속에 있었다. 그러나 변화의 흐름 속에서 휘청이는 것과 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봄날의 변화무쌍한 날씨는 잠깐의 불편함일 뿐이지만, 그것이 시국이나 세계 질서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마태복음 7장 24,25절)

우리는 세상의 변화에 휩쓸리는 존재가 아니라, 그 속에서도 중심을 지키며 설 수 있는 존재가 되라는 뜻이다. 혼탁한 시대 속에서도 원칙을 지키고 정직과 정의를 지켜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라도, 세상 속에서 어떻게 설 것인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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