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일본인 작가 마쓰미 토요토미가 쓴 책 중 사랑의 진실에 관해 다룬 탁월한 책이 있다. 『참사랑은 그 어디에』로 번역된 소책자인데, 본래 제목은 ‘세 가지 사랑’(3 Kinds of Love)이다. 첫 번째 사랑은 ‘만약에(If)의 사랑’이다. 내게 무언가를 해 준다면 사랑할 것이라는 조건부의 이기적인 사랑이다.

다음은 ‘때문에(Because)의 사랑’이다. 그 사람의 어떤 됨됨이나 행동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사랑이다. 이 경우 사랑의 조건이 깨지면 사랑도 사라지고 만다.

토요토미에 의하면, 참사랑은 ‘불구하고(In spite of)의 사랑’이다. 상대가 내게 무엇을 했든, 그가 어떤 모습이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 영원히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다. 이 작은 책을 읽으며 ‘나는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나도 이런 사랑을 받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 중에서 사탄이 했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욥 1:9)라는 구절을 읽을 때 이 세 가지 사랑이 자주 떠오른다. 욥기서는 성경 전문가들이 손꼽은 구약에서 가장 난해한 책이다. 욥기서의 주인공을 ‘인내의 대명사’인 욥으로 설정하면 3장 이후로는 전혀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욥기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선지식 하나가 꼭 필요하다.

사탄은 언제나 시험과 유혹의 주특기를 발휘한다. 그는 뱀을 통해서 인류 최초의 여자인 하와에게 접근해서 유혹에 빠뜨렸던 사악한 존재이다. 그런데 욥기서에서는 욥을 시험하도록 사탄을 부추긴 이가 하나님이라는 점이 아주 특이하다. 욥기서는 하나님이 사탄과 내기를 하심으로 출발된다. 사탄은 ‘사람이 어떤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문제 삼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반대로 ‘내가 사람을 어떤 사랑으로 사랑하는지’를 보여주신다.

그렇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차이이다.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자신의 생명을 희생시키면서까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신약 성경의 순교자 스데반이나 우리가 존경하는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도 마찬가지다. 스데반이 분노해서 이를 갈고 있는 무리들을 향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것’(행 7:55)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지 않았다면 결코 그는 순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일본 경찰이 잡으러 오고 공산당이 죽이려 하자 두려워 떨면서 도망가려고 했었던 유약한 사람들이었다. 두 분 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 좋은 사모님들의 호통에 정신을 차리고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가 타종교와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기독교는 사탄의 질문처럼 사람이 하나님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은혜의 종교’이다. 욥을 위로하러 온 친구들은 ‘인과응보’와 ‘신상필벌’의 발상으로 욥에게 발생한 비극의 원인을 유추하려 했다. 하지만 욥은 자신의 모든 재산과 자식을 잃을 만한 구체적인 죄를 지은 적이 없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사탄에게 환란과 시험을 허용하셨기에 발생한 일이다.

때문에 욥은 친구들의 고발에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러다 보니 욥 속에 들어 있는 ‘자기의’라는 것이 서서히 노출되기 시작한다. 친구들과의 언쟁이 하나님과의 언쟁으로 바뀌면서 결국 욥은 자기 속에도 몹쓸 ‘의’가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마침내 욥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에 이르른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5-6)

그렇다. 욥기서에 나타난 내기에서 최후의 승자는 사탄도 욥도 아니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무한한 은혜와 사랑 없이는 그 누구도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심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변함없고 다함 없으신 사랑이 있기에 오늘 우리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음을 기억하자. 이 소중하고 애틋한 사랑을 영원히 지속적으로 받아 누릴 우리의 하루가 소망과 기쁨과 감사로 출발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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