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쯤 되어 학생들은 겨울방학이라 학교에는 안 오고 교직원들 두세 명 정도만 출근하여 조용히 근무하던 때였다. 그 당시 23일이 금요일, 24일이 토요일이었다. 주말에는 교직원들이 근무 안 하니 금요일 퇴근할 때 쯤에 직원들께, “내일부터 크리스마스네”라고 얘기했더니 반응들이 시큰둥했다. 그래서 “혹시 산타클로스 아냐?”고 재차 물었더니 “모른다”라는 답변이 짤막하게 되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얘기가 안되겠구나하고 대화를 멈추었다.
그리고 이튼날,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온종일 학교 예배당이 조용했다. 저녁이 되어도 아무도 안 왔다. 학교는 그야말로 밤새껏 적막감만 나돌았다. 진짜 “조용한 밤”이었다. 그렇게 24일은 혼자서 보내고, 25일이니 “성탄예배”라도 드리러 오겠지하고 내심 기다렸다. 그런데 낮 10시, 11시가 되어도 아무도 안 나타났다. 성탄절 아침인데 그야말로 개미새끼 한 마리도 안 나타났다. 화가 나기도 해서 부총장께 전화했더니 1년 전에 약속한 세미나가 있어서 멀리 타지방에 가 있어서 월요일 늦게 돌아와서 화요일 출근한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미리 얘기 좀 해주었으면 기다리지나 않지 하며 혼자 야속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게임은 이미 끝났으니 어쩔도리가 없이 진짜 Blue Christmas를 마치고 월요일(26일) 아침을 맞게 되었다. 죄없는 직원들을 쎄게 나무랄 수도 없고 가볍게 “나 혼자 주말을 보냈다”고 했더니, “내년에는 크리스마스 챙기겠다”고 했다. 과연 금년 크리스마스는 제대로 할지 반신반의 하며 걱정부터 앞선다.
그러면 왜 그렇게 되는가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우선 여기는 1년 내내 더우니 추운 겨울의 크리스마스, 하얀 눈, 케롤송, 이런 것들은 본 적도 들은 적도 배운 적도 없었던 것이다. 한국 같으면 겨울이 추우니 방학을 하면서 크리스마스를 즐거이 보내지만, 여기는 사실 추운 겨울이라서 방학이 아니고, 12월 20일경 학기말 고사를 보고 열흘 정도 쉬다가 1월 3~4일 경에 새 학기가 시작되니 겨울방학이라기 보다는 학기말 시험 후 일주일 정도 쉬는 꼴이 되는 것이다. 1년에 3학기제로 거의 1년 내내 공부하기에 방학이라는 개념이 없다. 한마디로 12월도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니 한국의 성탄절 같은 이미지는 도저히 그려지지 않는 곳이다. 사실 겨울의 눈도 작년 겨울 한국에서 보내온 눈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아 눈이 이렇구나. 우리는 눈을 못 보고 자랐다”는 얘기들이었다.
또 하나는 우리 학교는 아주 깡 시골에 있기에 모든 주민들이 먹고사는 문제가 절박한 곳이라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챙길 여유가 없고 케롤을 부를 이유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고들 여기는 것 같다. 학교 주변의 교회들도 그다지 성탄을 의미있게 보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 자신이 크리스마스 케롤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더구나 찬송가도 거의 없이들 교회 다니고, 있다 하더라도 악보 없는 옛날 한국교회 찬송가 스타일이고, 영어가 아닌 스와힐리어인데 당연히 크리스마스 노래가 담길 리가 없다. 성탄의 의미 자체에 신경을 안 쓰는 곳이니까. 나이로비 같은 도시에는 있을 수도 있겠다. 혹시 나이로비에는 성탄절이 있을까 하고 검색해보니 대단히 크게 하는 곳이 있긴 한데 자세히 보니 한국에서는 이단들이라고 알려진 교회들인데 돈도 많고 또 교인들도 많으니 홍보 차원에서 성탄을 대대적으로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 학교가 있는 오유기스는 저녁만 되면 칠흙같이 어둠이 드리워지는 곳이니 밤에는 나다니기 무서울 정도로 적막하다.
아무튼 작년에 그렇게 크리스마스 악몽을 지나면서 “내년 크리스마스는 한국에 가서 보내야겠다”고 살짝 생각도 했는데, 올해 크리스마스도 역시 여기 있어야 할 것 같다. 크리스마스 맞이하러 다른 나라에 나간다는 것은 정말 사치스런 일일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가능한 일이라고도 봐 진다. 어쨌든 작년보다는 나은 크리스마스가 되겠지하고 기대해보면서 12월 들어서 학교에 얘기를 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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