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의 원칙’이라는 기사를 한 번 읽은 적이 있는데, 내용의 요점은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우리자신이 100%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을 탓한다. 돈을 못 버는 남편에 대해서는 무능하다고 한다. 교회가 부흥이 잘 안 되면 교회는 담임목사 탓으로, 반면 목사님들은 교인들의 탓으로, 자녀는 부모 탓 부모는 자녀 탓 등등.
어쩌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원망하는 것에 소중한 에너지와 정신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에너지가 그런 것에 소모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인간이란 참 어리석고 무지하지 않은가! 쓸데없는 판단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우리 자신이 아닌가! 현재 내가 처한 상황, 나의 위치-잘 났든 못났든-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전적으로 내가 아닌가? 내가 선택하지 않았는가? 어찌해서 현재의 상황에 있다면 최종 결정은 우리 자신이 했음에 틀림없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더 큰 문제로 나를 끌고 간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는 ‘자유’라는 것에만 너무 치중할 때가 있다. 좀 비약적인 예가 될런지 모르겠으나 술도 너무 많이 마시면서 “내 자유인데 왜 그래?” 그런데 그 결과 건강에 대한 책임은 어떡할 것인가? 운전을 너무 자유롭게 속도를 내면 그 결과는 치명적이 될 수도 있다. 너무 자유로이 많이 먹어서 비만이 된 경우 그렇게 된 상황이 있었을 테니 이해는 하지만 결과적인 책임은 본인 자신에게 있다고 여겨진다. 자유의 남용, 오용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 내가 100% 자유를 누린다고 하면, 어쩌면 다른 사람은 제한적으로 자유를 갖게 될 것이다. 즉, 자유도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범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가령, 내가 우리 대학의 직원들을 비난한다고 해보자. 능력이 없다, 행정에서 부족하다고 비난해본들 달라지는 건 없다. 변화는 그들 자신의 몫이지 내가 밀어부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만 시간 손해, 에너지 손해, 나빠지는 성격 등등으로, 나의 어리석은 결과만 초래하게 된다.
위의 ‘100/0의 원칙’에서처럼 모든 작금의 문제는 오히려 나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그런 나 자신의 현실을 내가 극복하면서 주어진 달란트, 특기를 살리고 갈고 닦아서 오히려 자신에게 만족하여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더 지혜롭다고 봐진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병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