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식 박사
지난해 9월 17일 봉담 장례문화원에서 열린 故 이장식 박사 천국환송예배에 있던 고인의 영정사진. ©기독일보 DB
혜암(惠岩) 이장식 박사가 세상을 떠난지 1주기가 됐다. 혜암신학연구소 초대 소장을 역임했고 생전 한신대 명예교수였던 고인은 지난해 15일, 101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고인에 이어 혜암신학연구소 제2대 소장을 맡고 있는 김균진 박사(연세대 명예교수)는 15일 ‘혜암 이장식 교수님 서거 1주년 기념사’에서 “일 년 전 2021년 9월 15일 세상을 떠나신 고 혜암 이장식 교수님은 파란만장했던 한국 근대사를 몸으로 사신 분이셨다”고 회고했다.

그는 “일제 치하에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셔서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으시고, 해방 후 좌익과 우익의 사상 투쟁,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출범,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까지 3년에 걸친 한국전쟁, 4.19 혁명과 5.16 군사혁명, 1970년대에 일어나기 시작한 한국 경제의 급속한 발전과 한강의 기적, 한국 사회의 정치적 민주화 등, 실로 이장식 교수님은 한국 근대사의 산증인이라 하겠다”고 했다.

김 박사는 “이 같은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이장식 교수님은 세속의 명예를 탐하지 않으시고, 학자로서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다하시는 모습을 후학들에게 보여 주셨다”며 “한국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처럼 사회 활동, 정치 활동에 열심하는 일부 교수님들에 비해, 이장식 교수님은 역사의 흐름을 하나님께 맡기고, 불모지와 같은 한국 신학계에서 자기 전공 영역의 학문적 기초를 세우시며, 학자로서 또 교육자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에 묵묵히 충실하는 분으로 저희 후학들에게 각인되어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어느 것이 정말 나라와 민족을 위한 것인지, 후대의 역사가 판단해 줄 것”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한국신학대학에서 정년 은퇴하신 후 이장식 교수님은 70세가 넘은 연세에 머나먼 아프리카로 가셔서 선교에 몸을 바쳐 교회와 학교를 세우기도 하시고 신학교육에 전념하기도 하셨다”고 했다.

김 박사는 “또 약 10년 전 혜암신학연구소를 설립하셔서 한국 기독교의 보수 계열과 진보 계열의 신학자들의 만남과 친교의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처음으로 에큐메니칼 신학 운동을 시작하셨다”며 “이장식 교수님이 출판하기 시작하신 연구소의 논문집 「신학과 교회」는 보수 계열 신학자들과 진보 계열 신학자들이 공동의 주제 하에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한국 신학계 유일의 에큐메니칼 연구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교수님이 서거하신지 벌써 일 년이 지났지만, 교수님은 저희 후학들에게 한국 기독교 역사의 별과 같았던 분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인은 1921년 4월 17일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으며, 한국신학대학교(한신대) 제1회 졸업생으로 캐나다 퀸즈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한 후 미국 뉴욕 유니언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를 취득했다. 예일대학교 신학부 연구교수를 거쳐 미국 아퀴나스 신학대학원에서 신학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이후 그는 한신대 교수와 계명대 교수, 예일대 신과대학 연구교수,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신과대학 명예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서 은퇴 후 70세 고령으로 아프리카 선교사로 파송 받아 케냐 동아프리카 장로교신학대학 교수로 14년 동안 교육 선교에 헌신했다. 귀국 후 2014년에는 진보와 보수 신학을 아우르는 ‘혜암신학연구소’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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