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대개 변화라는 말은 목회자들 입에서 먼저 나오지만, 그 결과는 신통치 않는 것이 다반사이다. 변화라는 말을 꺼내고, 또 공표하면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목회자나 성도들 양쪽이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변화라는 것은 알리고 얘기한다고 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다. 즉 변화라는 말을 공표하고 나서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데에는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즉, 변화는 어떻게 가져오는가? 이것이 관건이다.
변화에 대해 여러 책이 있겠지마는 나는 다음의 두 권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활용했다. 하나는 하버드대학의 존 카터 교수가 쓴 "Leading Change"(Prof. John Kotter)이다. 8가지 단계를 얘기했는데, 그중에서도 긴박성(sense of urgency)이라는 용어와 개념이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긴박성을 느끼지 않으면 변화는 어렵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얘기다. 다른 책은 윌리엄 브릿지스 박사가 쓴 변화를 잘 관리하라는 의미의 "Managing Transitions"(Dr. William Bridges)이라는 책이다. 부제는 'Making the Most of Change'로 되어있는데, 이것의 의미는 '변화를 잘 가져오라'는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즉 변화를 제대로 가져오지 못하는 데에 대한 해답서라고 보여진다. 나는 이번 칼럼에서는 이 분의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써보려 한다.
브릿지스 박사는 변화라는 용어에는 두 가지가 있으며, 변화에는 3단계가 있다고 했는데 그것이 이 책의 중요한 핵심이다. 변화라는 용어를 CHANGE라는 말과 TRANSITION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CHANGE라는 말은 위치적으로 뭔가 바꾼다는 의미인데, 이사를 간다든가, 승진을 한다든가 하는 외부적으로 뭔가 바꾸어지는 것이고, TRANSITION이라는 말은 외부적이 아닌 내적인 심리적 의미라고 얘기한다(Psychological change). 쉬운 예로 집사에서 장로로 임직되었을 때에, 외적으로는 직분이 바뀌었으니 CHANGE이다. 하지만 장로는 되었지만 집사일 때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헌신도가 안 바꾸어 졌다면 그것은 진짜 변화 TRANSITION은 아직 안 되었다는 것이다. 즉 CHANGE와 TRANSITION의 의미를 구분해 놓은 것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다음에 브릿지스 박사의 탁월성은 변화에는 세 단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과거 것은 잊어버리고(Ending), 중간지대를 거치는 단계가(Neutral Zone) 필요하고, 다음에 새로운 시작(New Beginning)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여기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두 번째인 중간지대(Neutral Zone)에 관한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이 단계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와 가나안에 들어가 때에도 이 단계, 즉 유대광야를 거쳤다는 것이 상당한 의미였다. 사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 단계, 이 과정을 거쳐야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사람들은 광야에서 지쳤다. 그러나 지도자는 어쨌든 맡은 바 소임은 다해야 하는데, 가나안까지 입성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계속 가자는 부류와 다시 과거로 돌아가자는 팀이다. 진퇴양난이라고나 할까?
이것은 마치 라디오를 켰는데 소리가 안 난다든가, 전기 스위치를 올렸는데 불이 안 들어오는 것과 꼭 같은 상황이다. 지도자를 따르고 바라보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모습이 된다. 이것이 지도자가 갖게 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여기에서 지도자의 의지와 결단이 필요한 이유이다. Oscillation이라는 단어는 진동이라는 의미인데 큰 시계의 추가 좌우로 흔들리는 모습이다. 지도자에게 닥쳐오는 현실이다.
첫 째는 이런 과정과 단계가 있다는 것을 지도자는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들다. 사람들의 자연스런 반응이다. 그러나 완전히 그만두느냐, 계속 가느냐의 큰 변화는 있을 수가 없다. 모세의 경우도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그것은 지도자의 자질부족이다. 즉 [major] oscillation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minor] oscillations은 누구나 다 받아들인다. 이것은 어느 지도자이든지 갖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냐 저렇게 하느냐의 고민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가느냐, 계속 가느냐의 문제를 지도자가 고민하고 있다면, 사람들은 바로 감지하면서 “우리 지도자가 흔들리는 구나!”라고 단정을 내리기 시작할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경우는 연구소에서 학교로 변화를 가져올 때였다. 연구소 6년차 일 때(1999년 연구소 시작), 학교의 필요성이 느껴져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마침 미국 뉴헤이븐의 예일신과대에 잠시 가있던 차라, 미국에서부터 한국 연구소와 핵심 스탭들에게 학교의 필요성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일단 필요성을 얘기하는 것이지만 변화를 예상하라는 의미가 담겨있기도 했다. 학교로의 전환을 얘기했을 때 몇 가지 반응들이 있었다. 긍정적으로 보는 스탭들이 있는가 하면, 믿어지지 않는다는 반응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이 사역의 본부인 미국 측에서도 학교를 안 세웠는데, 한국에서 세울 필요가 있는가? 더 나아가 이 사역의 방향은 학교가 아니잖은가? 라는 반응들까지였다.
그 때에 내가 느낀 것은 사역의 책임자와 그 사역을 돕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구나, 또 하나는 그럴수록 내가 더 흔들리지 말아야겠구나라는 것이었다. 지도자가 함께 하는 멤버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수렴을 하되 너무 흔들리면 안되겠구나 하는 것도 터득하게 되었다. 나는 점점 더 학교설립의 의지가 강해져가고 있었다. 거의 누구도 막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물론 학교설립의 실패와 성공은 전적으로 내가 책임진다는 생각이 강했다.
진행해가면서 윌리암 브릿지 박사가 제시한 세 단계가 자연스럽게 움직여가고 있었다. 과거의 연구소 시절을 잊어버리고(Ending), 생각을 하는 단계를 거치면서(Neutral Zone), 학교설립준비라는 새로운 시작(New Beginning)이 있었다. [알리고], [시간주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삼단계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 삼단계 과정과 진행이 무 자르듯이 표시가 나는 것이 아니고, 물론 변화를 이끌고 가는 나 자신은 그것이 뚜렷했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거의 중복되어(overlap) 진행해 간다는 것을 느꼈다. 즉 과거를 잊어버리는 Ending은, 바로 중간지대 Neutral Zone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즉 Ending과 Neutral Zone이 약간 겹쳐 있는 것이다. 그리고 New Beginning으로 들어가지만 역시 그 이전의 Neutral Zone과 살짝 중복되어서 진행해갔다. 즉 이런 세 단계가 부드럽게 중복도 되어가면서, 동시에 분명히 다음 단계로 확실히 접어들었다는 것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책임이라 느껴졌다.
변화에는 이런 삼단계를 거쳐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1단계 Ending에서 3단계 New Beginning으로 바로 갈 수도 없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다. 사람들은 반드시 중간단계인 2단계가 주어져야 한다. 과거에서 미래로 바로는 안 간다. 아니 못 움직인다. 바로 가려고 하다가는 문제가 생기고 변화의 노력은 실패로 끝나기 쉽다.
사람들에게 시간을 주어야 한다. 할 거냐 말거냐 하는 결정에 대한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버섯이 자라는 것도 시간이 걸리고, 대나무가 자라는 데에도, 심지어는 애기를 낳는 데에도 10개월이 걸리지 않는가! 어떤 것은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생각 할, 즉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것을 준비하는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서병채 목사(케냐 멜빈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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