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예배(Modern Worship) 시대를 여는 현대 예배 음악은 ‘마라나타 음악(Maranatha! Music)’을 빼놓고는 상상할 수 없으며, 이 음반사는 현대 기독교 음악과 예배 찬양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초기 예배 곡 중 약 50% 이상이 마라나타 음반사를 통해 발표되었는데, 지금도 예배에서 많은 찬양이 불리고 있다.
1967년 베트남 전쟁은 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을 가져왔는데, 한편으로는 기성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명분 없는 전쟁에 반대하며 절망을 느낀 많은 젊은이들이 캘리포니아 해변으로 몰려가 히피(hippie) 문화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히피 문화는 초기에 젊은이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며 사회 문화적인 동조도 있었지만, 점점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절제가 사라지고 정당성과 신선한 문화운동의 진정한 목적이 사그라지면서 그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자유와 사랑, 평화를 추구하던 이들의 꿈은 이후 폭력과 마약, 살인으로 번지면서 처음 순수했던 동기가 훼손되기도 했다.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서구의 전통적 개신교 예배는 심각한 위기에 부딪혔다. 젊은이들이 전통적 예배 의식에 대한 거부적 성향을 보이면서 교회를 이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회는 젊은 세대에 대한 새로운 대응과 방식을 찾아야 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예배는 큰 변화를 겪었다. 오르간과 피아노 대신 기타와 드럼이 유입되고, 찬송가와 성가대 대신 록 밴드를 중심으로 한 경배와 찬양이 새로운 형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시기에 갈보리 채플(Calvary Chapel) 교회의 척 스미스(Chuck Smith) 목사는 정신적, 사회적으로 어려움에 처함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지속적으로 변화된 젊은이들을 토요 찬양집회로 불러내어 영적으로, 음악적으로 깊이 훈련시켰고, 그 당시 젊은이들이 만들었던 음악을 전문적인 작업을 거쳐 사람들에게 보급하게 하기 위해 1971년 ‘마라나타 음악(Maranatha! Music)’이라는 음악 선교 단체를 설립해 앨범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척 스미스 목사가 이끄는 갈보리 채플에 매료된 사람들 중에서는 마약에 취해있고 사양길에 접어든 록 밴드인 5인조 밴드 ‘러브 송(Love Song)’이 있었다. 이 밴드의 리더인 척 지라드(Chuck Girard)는 산타 로사(Santa Rosa) 출신으로 베테랑 스튜디오 음악가이자 가수였는데, 1960년대 초반 히트를 기록했던 ‘카스텔스(The Castells)’와 ‘혼델스(The Hondells)’라는 밴드에서 주요 파트를 연주하기도 했다.
‘러브 송(Love Song)’의 새로운 역사는 1969년 밴드의 멤버인 프레드 필드(Fred Fields)가 대학생 선교회(Campus Crusade for Christ, CCC)의 일원을 헌팅턴 비치(Huntington Beach)에서 우연히 만남으로서 시작됐다. 당시 히피 목회자였던 로니 프리스비(Lonnie Frisbee)와 갈보리 채플에서 일어났던 위대한 사건을 들은 필드는 밴드 멤버들에게 저녁 예배에 참석해보자고 권면했다. 그 날 저녁 설교를 맡은 사람은 척 스미스 목사였는데 지라드는 이 집회에서 스미스 목사를 설교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지라드는 자신과 밴드 멤버들이 스미스 목사의 기존 교회와는 달리 따뜻하고 편안하며 자유로운 설교에 크게 감동 받았다고 말했다. 이 집회 후 2주가 지나지 않아 밴드의 모든 멤버들은 영적 변화를 체험했으며, 1970년대 초반 모든 멤버들이 갈보리 채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게 되었다.
그들이 모두 침례를 받은 후 약 1개월이 지난 시점에 로니 프리스비는 밴드 멤버들에게 척 스미스 목사에게 새 음악을 작곡해 연주해주자고 말했다. 그들의 말을 들은 스미스 목사는 밴드를 따라서 공원에 갔으며, 그곳에서 밴드는 기타로 몇 가지 노래를 연주했다. 이들의 음악에 스미스 목사는 매우 감동했으며 컨트리 풍 사운드의 ‘러브 송’이라는 소프트 록은 갈보리 채플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곧 그들은 로니 프리스비의 성경 공부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들의 손끝에서 일어나는 폭발적인 음악적 달란트에서 영감 받은 스미스 목사와 프리스비는 1970년대 초반, 젊은이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기 위한 특별한 콘서트를 열기로 결정했다. 어느 봄날 금요일에 갈보리 채플은 롱비치(Long Beach)의 밀리켄(Milliken) 고등학교 강당을 빌렸으며, 이는 앞으로 매주 수년 동안 개최되었던 찬양 콘서트의 시초가 되었다.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지역 신문은 2천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10대들이 몰려들어 자리가 모자라 학교 밖에까지 줄을 섰다는 기사를 발표했다. 그러나, 참석자 숫자라는 단순한 지표는 콘서트의 주 목적에 비해 중요하지 않은 두 번째 목표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러브 송’의 공연 후에 약 600여명의 젊은이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초청’ 앞으로 나아왔다는 사실이다.
갈보리 채플에서 연주되고 불린 많은 음악들은 이전 전통적인 교회의 음악, 찬양과는 다른 형식의 새로운 음악으로, 후에 ‘찬양(Praise song)’이라 불렸다. 그리고, 이후 교회 공동체 예배 대부분에서 공유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음악은 단순한 찬송가와 현대 포크(Folk) 음악과 19세기 후반의 부흥에 사용되었던 오래된 복음송과 모두 결합되었다. 또 다른 찬양의 형태는 성령 안에서 노래하는 현상이었는데, 이는 오순절(Pentecostal) 운동 및 성령 은사주의 운동에 영향을 주었으며 ‘빈야드 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러브 송’의 멤버인 타미 쿰즈는 그에게 감동을 준 갈보리 채플 음악의 느낌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나는 불리기도 전에 다음 곡조를 알았어요.” 그는 또 이렇게 회상했다. “저는 그처럼 단순한 음악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저를 완전히 매료시켰어요. 그것은 사람들을 주님의 전으로 이끄는 음악이었습니다.”
음악이 갈보리 채플의 사역에 준 깊은 영향력에 놀란 척 스미스 목사는 이러한 음악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음반으로 담길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 했다. 1971년 초반, 그는 개인적으로 2,500달러를 헌금해 ‘갈보리 채플’ 앨범을 출시했다. 이 앨범은 ‘갈보리 채플’ 콘서트에서 수천 장이 판매되었던 훌륭한 스튜디오 앨범 중 하나였다. 이것은 그 해 말, 스미스 목사가 ‘마라나타! 음반사(Maranatha! Music)’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시초로 향후 10년 동안, ‘마라나타! 음반사’는 거의 100여개에 가까운 앨범을 녹음했으며, 동시에 서부 연안(West Coast)으로부터 시작해 미국 북동부를 포함한 전역으로 확대된 ‘갈보리 채플’ 밴드의 복음적인 사역 투어를 감당하게 되었다.
1971년 타미 쿰즈(Tommy Coomes)와 ‘러브송(Love Song)’ 밴드는 갈보리 교회 음악 사역 팀과 ‘The Everlasting’ Living Jesus Music Concert(영원히 살아계신 예수 음악 집회)’라는 음반을 출시했다. 이 앨범은 대단한 선풍을 가져와 엄청난 판매가 일어났으며 ‘마라나타! 음악(Maranatha! Music)’이 탄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후 1973년에는 ‘The Praise Album(찬양 앨범)’을 출시했으며 1977년까지 30여개의 앨범이 제작 출시되었다.
초창기에는 ‘프레이즈송(Praise Song)’과 성경 말씀을 기반으로 한 ‘말씀송(Scripture in Song)’이 만들어졌으며, 1971년에 ‘마라나타! 음악(Maranatha! Music)’을 통해 발매된 첫 번째 앨범에는 CCM의 선구자들인 ‘러브송(Love Song)’, ‘더 웨이(The Way)’, ‘스위트 컴포트(Sweet Comfort)’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토요 찬양집회를 통해 회심한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기타, 현악기, 드럼 같은 악기 그 당시의 음악적 스타일로 표현된 이 음악은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때 만들어진 음악이 ‘예수 음악(Jesus Music)’ ‘예수 록(Jesus Rock)’이다. ‘러브 송(Love Song)’ 밴드 그룹의 리더였던 척 지라드(Chuck Girard, 건반, 리드보컬)와 ‘예수, 가장 귀한 그 이름’ ‘우리 모일 때’ 등의 곡을 작곡한 타미 쿰즈(Tommy Coomes, 기타, 보컬)는 자연스럽게 갈보리 채플 교회에서 집회 공연을 해오다가 그 공연에 참여한 청중들이 자신들의 곡을 따라 하게 되면서 찬양 인도자로 사역하기 시작했다.
‘마라나타 음악’은 마라나타 음반사를 세우면서 본격적인 교회 예배 음악을 발전시키게 되었는데, 1975년 성장을 위해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었으며 타미 쿰즈(Tommy Coomes)를 찬양 앨범 제작의 책임자로, 척 스미스의 조카인 척 프롬(Chuck Fromm, 1950-2020)을 지도 목사로 세워 찬양과 음악적인 사역의 방향성을 잡아가도록 했다.
예배학자인 로버트 웨버(Robert E Webber) 박사와의 대화에서 척 프롬은 ‘예배에서의 찬양이 이 시대의 성찬’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예배에서 찬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마라나타 음반사를 비롯해 ‘Worship leader Media(워십 리더 미디어)’를 세워 ‘워십 리더 매거진(Worship Leader Magazine)’을 발행했으며 ‘내셔널 워십 리더 컨퍼런스(National Worship Leader Conference)’ 등을 주관하면서 예배 인도자와 찬양 사역자들을 새롭게 세워가며 지금까지 현대 예배와 찬양에 많은 영향을 끼쳐오고 있다. 최근에는 찬양과 예배 음악의 이론적인 근거를 음악 사역자들에게 제공하면서 세미나와 컨퍼런스를 통해 영적인 면뿐만 아니라 성경적 예배와 찬양의 이론과 실제의 균형 있는 접근을 통해 예배 인도자와 사역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갈보리 채플과 마라나타 음반사에서 처음 활약한 예배 인도자는 대니 대니얼즈(Danny Daniels)다.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빈야드 운동에 합류, 초창기 예배 인도자로 활약했으며 ‘Glory In The Highest(영광 가장 높은 곳에)’ ‘Hold Me Lord(주님의 손으로)’를 작곡했다. 또 1996년 ‘마라타나 싱어즈(Maranatha! Singers)’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여 집회를 가졌던 ‘테리 클락(Terry Clark)’은 마라타나 음반사를 통해 꾸준하게 영향을 미친 예배 인도자중 한 사람이다. 그는 우리에게 친숙한 ‘Isn’t He(예수의 이름은)’를 비롯해 수많은 찬양들을 통해 깊은 감동을 주었다. 특히 감미로운 목소리와 함께 깊은 진정성 있는 찬양은 지금까지도 그의 곡들이 사랑 받는 이유다.
그리고 마라나타가 자랑하는 또 한 명의 탁월한 예배 인도자는 모리스 채프만(Morris Chapman)이 있다. 그는 ‘Blessed Be The Name Of The Lord(주의 이름 송축하리)’ 등의 찬양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데, 다수의 앨범을 통해 수많은 곡을 작사, 작곡해 소개해왔으며 감동의 찬양을 통해 많은 예배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후 마라나타 음악은 차세대 젊은 예배 인도자들을 배출해냈는데, 타미 워커(Tommy Walker)와 폴 발로쉬(Paul Baloche)는 대표적인 예배 인도자다. 타미 워커는 ‘He Knows my Name(내 이름 아시죠)’ ‘Only a God like You(나는 주만 높이리)’ 등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많은 곡을 작곡하며 영향을 끼쳐왔다. 지금도 로스앤젤레스 이글락(Eagle Rock)에 위치한 크리스천 어셈블리(Christian Assembly) 교회의 예배 인도자로 30년 이상 사역하면서 전 세계 예배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까지도 한국에 4회 내한해 지역교회와 예배자들에게 예배와 찬양에 대한 많은 동기부여를 해왔다. 초기 마라나타를 통해 그의 곡들이 소개되었으며 지금까지 그가 발표한 곡들은 수백 곡에 이른다.
‘Hosanna(호산나)’ ‘Open The Eyes of My Heart(내 맘의 문을 여소서)’ ‘Your Name(그 이름)’ 등을 작곡한 폴 발로쉬(Paul Baloche) 또한 사역 초기 마라나타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사역자다. 그는 ‘마라나타 음반사’에서뿐만 아니라 이후 대형 음반사인 ‘인테그리티 음반사(Integrity Music)’를 통해서도 계속 앨범을 발매하며 예배 음악의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해왔다.
기타 연주의 어쿠스틱한 사운드와 부드러운 스트링 연주가 주를 이루던 이들의 음악은 1980년대 들어서면서 좀 더 세련되고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마라나타 음반사는 이후 1990년대 교회와 기독교 사역단체를 섬기기 시작했으며 ‘프레이즈 앨범(Praise Album)’ 시리즈의 ‘마라나타 싱어즈’ 외에도 현대적인 찬양 앨범을 제작해 ‘프레이즈 밴드(Praise Band)’ 그리고 여러 소속 예배와 찬양 사역자뿐 아니라 단체들을 돕는 일을 해왔다. 또 어린이를 위한 ‘솔티 시리즈’를 통해서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교회와 아이들을 변화시켰다. 또한 쉽게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음악과 중후한 아카펠라 그리고 찬송가 메들리의 찬양과 음악을 통해 영향을 끼쳤으며, ‘프라미스 키퍼스(Promise Keepers)’와 연합을 통해 앨범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마라나타 음악은 거룩한 교회음악과 세속적인 음악의 장벽을 허무는 계기와 차별을 없애는 일을 했다는데 의의가 있지만, 성장과 발전을 이룬 이후 나타나는 상업성과 예배에서의 ‘전자 음악(Electric Music)’의 무분별한 사용과 경건성의 상실 등은 고민해봐야 할 문제로 대두되었다.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예배학과 교수)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