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변증 유튜브 채널 다마스커스TV에 12일 ‘왜 기독교인이 아닐수록 기독교에 대해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영상이 게시됐다.
운영자는 “오늘은 ‘왜 기독교인이 아닐수록 더 기독교에 대해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주제로 생각을 나눠보려 한다”며 “신앙의 내용은 우리의 예상처럼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잘 없다. 이성적인 체계로 다 담아둘 수 없다는 말이다. 신앙을 이성만으로 다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은 기독교 신앙이 이성적이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예상보다 덜 교조적이고 덜 교리적이면서 우리의 실제 경험에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유연하다는 뜻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운영자는 “자신을 왜 사랑하냐는 연인의 말에 이성적으로 답할 수 있는가에 대해 논증을 펼치며 얘기를 못 한다. 어린 왕자의 말처럼, 진짜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체계적으로 설명해 내기도 어렵다”며 “기독교의 내용에는 우리 예상을 항상 조금씩 벗어나는 기묘한 뒤틀림이 있다. C.S. 루이스의 말을 빌리면, 거기에는 범신론이나 뉴턴 물리학에서 나타나는 그런 수상쩍은 선험적 명료함이 없다. 기독교 신앙은 항상 다 알았다고 여길만한 시점에 특유의 의외성을 발휘한다. 수백 번을 읽은 성경이 지금 봤을 때 전혀 다르게 보인다.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 자신이 변화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기독교 신앙은 물론 본질적으로는 불변하지만, 우리의 상황과 역사와 시대와 계속해서 대화하면서 다양한 각도로 휘어지기도 한다. 이거는 마치 고무를 늘리거나 휘어도 그게 여전히 고무인 것과 같은 것이다. 기독교는 때론 이성적 설명도 제공하지만, 때로는 왜 나를 사랑하는지 물을 때 말없이 포옹으로 다가오는 연인처럼 다가오기도 한다”며 “길게 설명한 이유는 기독교 신앙이 어떤 논리체계를 넘어서서 하나의 삶의 방식이자 실존이라는 말을 드리기 위해서다. 구약학자인 ‘피터 엔즈’의 말에 따르면 성경 자체가 다양성과 복잡성을 담고 있고, 이것은 자신의 백성들을 알기 위해 또한 자신을 알리기 위해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분의 특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운영자는 “기독교 신앙의 내용 중 상당수는 기독교 안에 들어가야만 비로소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 체험에서 완전히 분리돼야만 그것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예를 들어서 왠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신학자보다는 불가지론자인 신학자가 훨씬 객관적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다. 또 무신론자인 종교 연구가가 기독교를 더 꿰뚫어 볼 것만 같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건 마치 사회학자가 되면 부처보다 인간의 삶을 더 잘 꿰뚫을 수 있을 거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린다. 이 말은 굉장히 이상하다 들리지 않냐”며 “기독교에 대해서는 이런 표현이 너무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운영자는 “만약 한번도 가보지 않고 뉴욕에 대해 전공한 전문가가 있다고 가정하고, 이 사람을 뉴욕에서만 70년을 산 할아버지랑 비교를 한다면 누가 더 뉴욕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가?”라며 “이건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걸 답하려면 ‘더 잘 안다’라는 말을 정확히 정의해야 한다. 만약, 뉴욕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 잘 알고 싶다면 전문가의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것이다. 관광이나 멋진 식당도 이 뉴욕 전공자가 더 잘 알 수 있다”며 “그런데 뉴욕에 70년 산 할아버지만이 알 수 있는 뉴욕도 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뉴욕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직접 그곳에 있어 본 사람이 아니라면 모르는 것들이 있다. 느낌이라는 게 객관적인 정보로서 지식으로서 공유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누군가 뉴요커의 심리에 대해 논문을 쓸 수 있지만, 그 논문이 그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보고 느끼고 살아가는지를 다 담아낼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운영자는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활자화하고 정보화해서 어딘가에 저장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지식의 전달과 저장이 인류에 발전에 있어 엄청 중요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험이나 실존적인 느낌들이 사실이 아니라던가 믿을 수 없다거나 그런 것들이 지식보다 하등하다고 생각을 한다면 이것도 너무 치우친 사고”라고 했다.
이어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도 기독교란 종교가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어떤 내용을 믿으며, 어떤 갈등이 있었고, 어떤 역사가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세상에 선하고 악한 영향을 미처 왔는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알 수 있다”며 “이 사람들은 뉴욕에 가보지 못한 전문가와 똑같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기독교라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일종의 렌즈이고 신과의 경험을 표현한 하나의 체계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객관적 언어로 지식의 형태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어 “좀 여담이지만 C.S. 루이스가 그래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기독교인들이 실제로 느끼고 감정적으로 동의하는 것을 객관적인 표현으로 잘 옮겨놓은 사람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런 루이스조차 결국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믿듯 기독교를 믿는다. 그것을 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의해서 다른 모든 것들을 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며 “물론 이 렌즈가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 기독교가 아닌 것을 기독교라고 믿으면서 왜곡된 시각을 장착한 사람들은 정말 많다. 하지만 소위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그런 기독교 전문가들은 이미 그것 자체로 하나의 렌즈인 그 기독교를 또 다른 렌즈로 보려고 한다. 안경 쓰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렌즈를 착용한 상태에서 안경을 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이처럼 신앙 밖에 있는 사람들은 신앙인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고 했다.
운영자는 “‘전투적 무신론자’ 중에서는 어린 시절 교회에 잠깐 다닌 경험이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 태어났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기독교를 전부 파악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21살이 되어서 기독교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기 시작했다”며 “알게 된 것도 아니고 알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독교에 대해 내가 잘 알고 있다. 나도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정당하게 기독교를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반대로, “무신론을 전부 다 알고 있으니 모든 무신론자들이 나처럼 기독교인으로 회심 해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변증가들도 어폐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며 “누군가가 기독교인이 되는 경험을 나름대로 압축해서 표현해 보자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심한 사람은 태양이 지구를 돌듯, 모든 것이 자기 주위를 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예수라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게 회심”이라고 했다.
이어 “지동설이 왜 대단하냐면 그걸 통해 모든 물리학과 천체 연구가 발전하며 모든 걸 바꿔놨다.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 자체가 바뀌고 철학도 바뀌고, 신학도 바뀌었다”며 “그런 것처럼 예수를 믿는다는 것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서 이제는 예전에 보지 못했던 질서와 구조를 세상에서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주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풀입 하나에서도 신의 손길을 보게 된다. 예전에 예능에 박진영 씨가 나와서 얘기했던 것처럼, 내 심장이 뛰고 호흡이 이렇게 되는 것도 내가 의식해서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공짜로 해주고 있는 거구나. 아니 최소한 공짜로 이렇게 되도록 누군가가 설계를 해준 거구나 라고 시각이 바뀌는 것”이라고 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