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있다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요한일서 1:6)
하나님과 사귐(예수를 믿음)이 있다 하면서 선행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은 반율법주의이다.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이란 말이 현재사이니만큼 상습적으로 행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신자도 실수가 없지 않다. 그러나 상습적으로 기탄 없이 그런 행실을 일삼지는 않는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대신 사면(赦免)된 바라바의 뒷날 이야기를 소설화한 것이 스웨덴의 노밸 문학상 수상 작가 라게르크비스트(Par Fabian Lagerkvist, 1891-1974)의 <바라바>(Barabbas, 1950)이다. 이 소설의 서두(序頭)는 다음과 같다.
“그들이 십자가 위에 어떻게 매달려 있는지, 또 그 사람의 주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누구인가는 모두 알고 있는 일이다. 그 사람의 어머니 마리아, [십자가를 지고 피와 땀을 흘리는 예수에게 수건을 준] 베로니카, 십자가를 대신 져주었던 구레네의 시몬, 그 사람에게 수의를 입혀준 아리마대 요셉이었다.
그러나 언덕 아래 한쪽 편에 한 사나이가 서서, 자기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사람들 중에서,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 그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인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사람, 그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그 사람의 괴로움에 찬 외침소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바라바였다”.
바라바는 십자가형(刑)을 목격한 후 그리스도의 부활 소식을 듣고 마음에 충격을 받았다. 바라바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모임에 끼려 하나, 제자들과 신도들로부터 배척을 받았다.
다시 산적(山賊)이 된 바라바는 뜻하지 않게 친아버지를 죽이게 되고,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은 다하였다. 그러나 골고다 언덕에서의 일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았다.
산에서 자취를 감춘 바라바는 노예로 팔려가 중노동을 하고 있었다. 거기서 사하리라는 그리스도인의 영향으로 신앙생활에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네로 황제에 의한 기독교 박해가 있었다. 바라바는 기독교 신앙을 버렸으나, 사하리는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하였다.
사하리의 신앙에 감동한 바라바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수하고 당국에 체포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중 아무도 바라바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감옥에 감금되었던 그리스도인들은 황제 네로와 로마 시민들이 여흥(餘興)으로 구경하는 가운데, 콜로세움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서로 위로하며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러나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바라바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 구경꾼들은 집에 돌아가고,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순교의 죽음을 죽었다. 형장에는 바라바 홀로 살아 남아 있었다. 그는 늘 두려워하던 죽음이 닥쳐오는 것을 느끼며 어둠을 향해 말하였다. “주께 내 영혼을 바칩니다.”
이 소설의 소재는 2000년 전 과거의 이야기지만, 추구하는 주제는 20세기 현대의 이야기이다. 믿을 수 없고 또 사랑할 수 없는 비극적인 실존(實存), 이것이 기계문명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속성이라고 할진대, 우리는 예수 대신 생명을 보존한 바라바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찾아보게 된다.
김희보 목사는
예장 통합총회 용천노회 은퇴 목사로, 중앙대 국문과와 장신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에서 목회학박사(D.Min.)와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월간 「기독교사상」 편집주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서울장신대 명예학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문학과 기독교(현대사상사)」,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3권)」, 「지(知)의 세계사(리좀사)」, 「세계사 다이제스트1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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