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지난 12월 27일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도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지는 기독교세계관 학술지인 ‘월드뷰’ 발행인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승욱 박사는 새로운교회(담임 한홍 목사)에서 장로 임직을 받았다. 현재 강남의 한 개척교회에서 장로로 섬기고 있다. 아래는 지난 ①편에 이은 ②편의 일문일답.
-기독교는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와 대척점에 있는가?
“우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 다른 의미다. 칼 막스는 최종 유토피아 사회를 공산주의로 상정하고, 자본주의 사이의 과도기적 단계를 사회주의로 규정했다. 그러나 도널드 서순이 20세기 유럽 좌파 정당들의 흥망성쇠를 쓴 저서 ‘사회주의 100년’에 따르면, 20세기 공산주의 국가는 실패했다. 이와 다른 개념의 사회주의도 현대 유럽 좌파 정당들이 기업과 개인에 대한 높은 세율 부과 및 재분배 정책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때문에 요즘들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추세라고 보면 된다.
다만 도널드 서순은 서로 다른 개념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간 공통점은 바로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사유재산 제도를 부정적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현대 유럽 좌파 정당들이나 중국도 사유재산을 인정하되 아주 적게 인정하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유물론이 근간인 사회주의 국가들은 유신론을 근거로 한 기독교에 매우 적대적이다. 중국과 북한을 보면 알 수 있다.”
-초대교회의 ‘유무상통’(有無相通)을 근거로 공산주의를 지지하려는 입장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순절 성경 강림 이후 ‘저마다 제 것을 제 것으로 여기지 않고 팔아 사도들 발 앞에 놓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일각에선 이를 근거로 막스가 말하는 원시 공산주의의 모습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건 초대교회의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성령 강림 이후 한 때 있었던 아주 예외적인 현상이었을 뿐이다. 이어 발생한 스데반 집사의 순교 사건 이후 성도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기 제집으로 갔다고 나왔다. 이는 초대교회 성도 대부분이 자기 집을 갖고 있었다는 의미다.
초대교회 연구 문헌들에 따르면, 초대교회들은 에세네파를 제외하곤 대부분 사유재산을 인정했다. 무엇보다 구약 십계명에는 네 이웃의 재산을 탐내지 말라고 나왔다. 십계명은 현재도 유효하다. 그렇다면 네 이웃의 재산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은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을 전제로 한 명령이라는 것이다. 사유재산을 인정할 때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거나 헌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헌금하면, 그것이 헌금인가? 성경에선 이를 도둑질이라고 말한다.
공산주의는 재산을 네 것도 내 것도 아닌 우리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기독교 경제관의 핵심은 청지기 정신이다. 내 것도, 네 것도, 공동체 것도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소유물이다. 다만 하나님이 신자 개인에게 소유를 맡겼다는 것이다. 청지기 정신이란 각 개인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을 당신의 뜻에 따라 선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성경이 말하는 것과 가장 근접한 시스템인가?
“자유민주주의의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인 대의제 정치의 뿌리는 기독교다. 16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종교개혁자 존 낙스를 중심으로 의사결정 방식을 논의했다. 그 결과 교인들이 장로를 선출하고, 그 장로들이 교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제도를 도출했다. 이것이 영국으로 넘어가 의회민주주의로 발전했다. 우리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결국 기독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를 보면 광장식 직접민주주의가 힘을 얻고 있다. 대의제 정치제도에 따라, 국회에서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들 간 논쟁을 통해 바람직한 의견을 도출하는 숙의민주주의의 작동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광장 민주주의는 선동과 감정이 난무할 위험이 도사린다. 그렇게 되면 프랑스 대혁명 이후 갈피를 잃은 광란의 단두대 정치로 귀결될 뿐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성경의 정신과 가까운가?
“자본주의 제도의 원형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유래했다. 애덤 스미스 당대 활동했던 물리학자 존 뉴턴은 하나님이 물질세계에 만유인력이라는 물리법칙을 세워 질서가 유지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계몽주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도 이러한 물리법칙이 인간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고 봤다. 즉 이기적이고 약육강식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이성이 있기에, 이러한 이성을 갖춘 인간들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강력한 국가 제도를 만들고 권력을 위임해 질서를 유지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사회질서 유지의 원동력은 인간 이성뿐만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사랑과 도덕 감정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후술한 국부론에서 이것의 선결 조건은 경제적 문제 해결에 있다며 하나님이 인간사회에 심어놓은 법칙이 바로 ‘시장’이라고 본 것이다. 마치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이 우주 만물에 적용되듯, 수요·공급의 원리도 인간사회의 공통된 법칙이라는 말이다.
물론 자본주의는 단점도 많았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자 시대를 거쳐 변용됐다. 과거와 달리 복지 이념을 거부하는 현대 자본주의자들은 거의 없다. 한국이 자본주의 역사 50년 동안 압축성장에 따른 문제점이 있다면 자유시장경제를 보다 더 나은 질서가 될 수 있도록 개선하고 변형시키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저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성경에 근접한 개념이라고 본다.”
-일각에선 정교분리를 근거로 교회의 정치참여 반대를 외친다. 정교분리는 정확히 무엇인가?
“정교분리의 핵심은 국가권력이 교회에 간섭하지 말라는 의미다. 1600년대 초 영국 국왕 제임스 1세는 청교도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겠지만 예배 예식을 영국국교였던 성공회 형식에 따를 것을 요구했고 이에 반발한 영국 청교도들 일부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미국을 세울 때 수정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명시하고, 국가권력이 교회에 간섭할 수 없다는 정교분리 원칙을 선언했다. 그런데 이를 오해해서 마치 교회가 정치에 간섭하지 말라는 말도 나온다.
교회는 엄밀히 말해 신자 개개인이다. 개개인의 크리스천들이 조직으로 모여 정치적 이슈에 대해 분별하고 찬·반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종교인이 정치에 개입하는 건 당연하다. 가령 차별금지법이 동성애자들을 비판하면 목회자의 활동에 상당한 차질을 줄 수 있는 법안인데, 이것에 대해 교회는 침묵해야 하는가? 아니다. 교회는 당연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부가 종교적 신념에 반대되는 것을 강제하니까, 그것에 반대할 권리가 교회에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법안을 지지하는 정치가에 대한 낙선 운동도 펼칠 권리도 교회에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 시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어려운 질문이다. 31년 중앙대 교수 생활동안 내가 결론내린 바는 시장경제가 성경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를 예측하기 쉽지 않지만 한국이 사회민주주의로 갈 가능성이 높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친중·친북 정권이 들어선다면 한국의 미래는 밝지 않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북한이 붕괴되거나 자유민주주의·한미일 안보 공조·자유시장경제를 굳건히 할 수 있는 대통령이나 정권이 유지된다면 저는 이를 하나님의 개입이라고 본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대한민국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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