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잡념(雜念)
마지막 말매미가 울고 있다.
고추잠자리를 데리고
심방 온 여집사(女執事)의
흰테 안경 너머
흔들리는 바람이 보인다.
찬송가를 부를 때마다
마른 구름 하나
시편(詩篇)에서 보았던가.
검사장(檢事長)님댁 뜰에
단풍잎이 물들고 있다.
바다쪽 난간에
연습비행기의 폭음소리가
이 산읍(山邑)의 가을을
흔들어 놓고 있다.
잠깐
아픈 타관(他關)의 하늘이
엿보여
낯 붉히는 동안
더운 여름에 보이던
풀벌레 이름들 몇이
보이질 않는다.
(※괄호 한자는 원문임)
(양채영 제2시집, <善·그 눈>, 시문학사, 1977에서)
양채영(1935-2018, 제 33회 한국문학상) 시인은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문경 새재 넘어 중원 땅 충주에서 평생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필자의 스승이기도 하다. 2004년 "제3회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을 수상한 시인들이 뽑은 참 시인이었으며 지금도 왕성하게 부산 기독문단에서 활약 중이신 유명 원로시인 양왕용 장로(1943~ , 부산대 명예교수)의 숙항(叔行)이기도 하다.
충주는 초기 선교사들의 지역 선교 정책에 따라 백운산 등 산악을 중심으로 원주, 충주, 제천이 지금도 삼각 트라이앵글을 이루는 감리교의 고장이다. 아펜젤러 목사를 이어 정동감리교회 한국인 최초 담임 목사요 한국 최초 신학자였던 탁사 최병헌 목사(1858-1927)도 이곳 충북 제천 출신이었다.
지금도 인천과 더불어 필자의 고향 충주 그리고 제천은 감리교세가 타 교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지역이다. 국민일보 후원회 회장을 하셨고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로 은퇴하신 제 형님은 충주제일감리교회 학생회회장을 하셨고, 필자는 제일감리교회부설 유치원을 다녔고 선생님들은 누님의 친구들이었다. 당시 담임은 호리호리하고 키가 크신 손피득목사님이셨다. 그러니 훗날 이 교회 주요 장로들은 모두 형님의 친구들이었다.
신실한 감리교 집사님(훗날 권사님, 양채영 선생님 시 중의 아마 '검사장님' 댁, 오늘날 검사장과 다름)이 계셨다. 우리집 애경사에는 만사를 제껴두고 궃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분이었다. 그 큰아들을 초등부터 고등학교까지 필자가 과외를 하였다. 친구의 아재인 오직 필자에게만 배우겠다고 생떼를 썼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착하기 그지없던 아이를 군대의 폭력은 가만두지 않았다. 십자가 달리시던 예수님을 바라보던 마리아의 심정이었을까? .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롬 8:11). 권사님은 아들 목숨의 보상금으로 감리교회를 개척하였다. 필자는 이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늘 아려온다.
평생 창조 세상의 꽃과 풀들과 나무와 숲을 노래한 필자의 스승이신 존경하는 고 양채영 선생님의 시를 읽다. "왜 문학을 하고 이 어려운 시"들을 쓰려 하냐고 안쓰러운 눈으로 격려하시던 감리교 집사님이던 사모님의 격려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조덕영 박사(신학자, 작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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