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채 총장
서병채 총장
교회구조는 교회성장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평신도목회에서 교회구조란 사역이 자유로이 진행되고, 꽃이 필 수 자유로운 분위기의 구조여야 한다. 즉 구조를 위한 구조가 아니라 사역하기에 알맞은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구조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모든 성도는 사역자라는 개념이 있어야 하고 둘째, 위원회보다는 팀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not committee, but team). 이것은 특히 풀러신학교 교수였던 그레그 옥덴이 박사과정의 학생들께 강조한 바이기도 하다.

위원회를 팀으로 꾸려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가운데 위원회는 몇 가지 허점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헌신에 있어 동등한 수준을 유지 못한다고 한다. 즉 위원장, 부위원장 등등. 거의 대부분의 기관이나 조직들 속에서 생겨지는 갈등이 이런 위치(자리)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즉 상하식의 상황은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사명(mission)이 초점이 아니고 유지(maintenance)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과거의 모든 기관들은 유지하는데 관심을 더 갖기에 모였다 하면 회비부터 정하기도 했다. 왜? 모임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모임의 목적이 불분명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서로 서로 손잡고 사역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감독과 정책그룹이 된다는 것이다. 모임이 어떤 비전과 방향을 가지고 있다면 그 쪽으로 갈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방향성을 가지고 가기보다 가기 이전에 너무 걸림돌이 많다는 것이다. 소위 정책과 규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관계중심이 아니라 일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작금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의 문제점은 너무 성과주의, 일중심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은 하지만 갈등을 가지고 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지양되어야 할 현실적인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사역을 위한 마음(heart)이 결여된다는 것이다. 위원회라는 개념은 사역을 향한 불타는 정열을 돌출해내기 어렵다.

이런 측면에 비추어볼 때, 교회구조는 사역에 맞게끔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혹자는 구조를 완전히 없애고 새로운 구조로 급회전시키려 하는데 그것은 좀 무리가 있는 듯하다. 변화가 없는 것은 죽음이지만, 또한 갑작스런 변화도 죽음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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