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젠더불쾌증)처럼 보이지만, 트랜스젠더의 정의에 벗어나는, 그러나 비슷해 보이는 현상들이 있다.
이성복장(cross-dressing 크로스드레싱)은 반대 성의 사람들이 입는 복장을 하는 것이다. 즉 여장남자 또는 남장여자를 의미한다. 대개 재미나 유희나 멋으로 남자가 여성스러운 셔츠를 입는다거나, 여자가 남성의 모자를 쓴다거나 하는 것도 부분적이지만 일종 크로스드레싱이다. 그러나 부분적이든 전적이든 크로스드레싱을 하더라도 그들이 반드시 트랜스젠더는 아니다. 또한 그들 대부분은 이성애자들이다. (예를 들어 쇼팽의 모성적인 연인 조르주 상드는 남장 여성으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반대 성의 복장을 하는 것은 젠더불쾌증에 가깝다. 드랙(drag)은 공연이나 연예 또는 예술 등 생계를 위해 또는 직업적으로 반대 성의 옷을 입고 반대 성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예를 들면 흔히 파티나 클럽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무희나 가수가 반대 성의 복장(cross-dressing)이나 치장을 하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 분장을 하는 경우를 드랙킹(drag king)이라 하고, 남자가 여자 분장을 하는 경우를 드랙퀸(drag queen)이라 한다. 한편 포우퀸(faux queen. faux는 가짜 모조라는 의미)이라는 역할도 있는데, 이는 여자가 드랙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분장한 모습은 드랙퀸과 구별되지 않는다.
드랙은 젠더정체성에 있어 시스젠더일수도 있고 트랜스젠더일 수도 있다. 성적 지남과는 상관없다. 드랙의 분장은 흔히 화려하고 연극적이며, 희극적이기도 하며, 과장되고 괴상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소위 “드랙 예술가”들은 오랜 “LGBT 문화”(그런 것이 있다면)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급진 페미니스트학자로서 레스비언이기도 한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 이론을 드랙으로 설명하였다. 즉 겉으로 드러난 행동(performance)으로 젠더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성복장도착증(transvestism, transvestic fetishism 또는 fetishistic transvestism)은 성도착증 중의 하나이다. 즉 반대 성의 복장이 성행위와 흥분을 야기하는 성적 패티시(sexual fetish 성적주물(呪物))가 될 때이다. 말하자면 이성복장을 해야 성적 흥분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동성애자 중에 이성복장을 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이성복장도착자(transvestite)는 이성애자이다. 또한 그들은 트랜스젠더도 아니어서, 젠더불쾌증도 없고, 성전환수술을 원하지도 않는다. 반면 이성복장도착증은 흔히 다른 성도착증, 예를 들어 성적 가학증, 성적 피학증, 소아성애 등 성도착증과 동반한다.
포르노에서 이성복장을 하는 경우를 “tranny”라고 부르는데, 이들을 트랜스젠더라고 말하는 것은 트랜스젠더로서는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제3의 성(젠더, third gender)은 20세기 문화인류학자들이 비서구 문화권들에 대한 현지조사에서 발견하였다고 하는 바,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래서 세 번째의 젠더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4번째 5번째 젠더도 있을 수 있다) 이들은 그가 속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두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젠더로 인정받으며, 사회적으로 박해도 받지만, 일정한 역할을 하면서 살고 있다. 원시사회의 문화에서는 이런 제3의 젠더 사람들은 흔히 주술사로서 현재와 내세의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기능을 부여받고 있다.
가장 유명한 제3의 젠더의 예로서, 인도대륙의 히즈라(Hijra)가 있다. 이들은 출생 때는 남자로 지정되었으나, 성인 때는 여자로서의 성적 역할 및/또는 젠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히즈라는 어려서는 여성성을 표현하고 나이 들어서는 성적 지남(지향)에서 남성적 남자에게 끌린다고 한다. 서구 학자들이 그들에 대해 자세히 조사 연구한 결과, 실제로는 그들은 대부분 트렌스젠더, 또는 넌바이너리(젠더퀴어) 또는 어려서 외상에 의한 거세당한 상태였다고 한다. 히즈라는 그들끼리 공동체를 이루고 살며, 일반 사회에서 주술사나 매춘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수가 많다.
또 다른 예로서 미국 인디언 사회에서 발견되는 Two-spirit(또는 twospirited)이 있다. 이는 (남자와 여자의) 영혼 두가지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서구 학자들이 만든 신어로서, 제3의 젠더라고 주장한다. 이 용어를 현대 인디언들도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은 서구 사회의 개념으로는 젠더변이(gender viariant), 즉 젠더퀴어이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 나바호 인디언 사회에서는 Nadleehe라 한다. 이들은 제의를 위한 주술사로서 나름 존경받는 지위를 가진다.
반면, 태국의 카토이(Kathoey)는 제3의 젠더로 말해지지만, 사회적 스티그마를 가진다. 이들은 트랜스여성 또는 여성역할을 하는 게이를 의미한다. 이러한 여성 역할을 하는 젠더를 트랜스여성적 제3의 젠더(Trans-feminine third gender)라고도 한다.
이러한 문화적 제3의 젠더는 전세계적으로 많이 발견되고 있다. 현재 100여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 제3의 젠더의 모습은 어떠한지에 대한 일정한 견해가 없다. 또한 이들이 젠더퀴어와 어떻게 구별되는지에 대한 이론도 없다.
현대 사회에 이런 제3의 젠더같은 비자연적인 젠더 개념들이 화제가 되는 이유는 “다양성, 평등, 그리고 포용“에 대한 증진된 사조 때문이다. 현대 서구의 엘리트들은 미개 또는 원시적 사회문화권에서 성적 및 젠더역할이 서구 전통 기독교적 문화와 달리 “다양”하다고 주장하며, 제3의 젠더도 하나의 법적 젠더로 인정하자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공식문서에 성별을 표시하기 위해, 남자, 여자 그리고 X라는 칸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다양성과 평등과 포용을 주장하는 젠더이데올로기,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 내지 워키즘(wokism)이 강박증적으로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상은 LGBTQ+를 반대하는 크리스천으로서는 반대하는 바이다.
그러면 성경은 이성복장 내지 이성의 외양으로 꾸미는 것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신명기 22장 5절에 분명히 말씀하신다: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이니라.
가증하다(abomination)는 말은 혐오스럽다는 의미이다. 제의적 의미에서 깨끗하지 않은 음식이나 우상처럼 사악하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사악하다고 보는 이유는 아마도 다른 성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남을 속이기 위한 것, 즉 다른 성으로 착각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상적으로 사용하는 여성용 바지나 남성용 치마는 이에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즉 남을 속이기 위한 이성 복장은 동성애를 위한 것으로, 성경이 순리대로 살지 않은 것을 꾸짖는 바와 같다. (로마서 1장 24-27절)
우리 크리스천은, 현대 세상의 문화가 어떠하든, 성경의 원칙대로, 남성 또는 여성에 알맞고 또한 규율에 맞는 복장이나 외양을 갖추어야 한다. 즉 성경은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리도전서 14장 40절)고 명령하신다. 복장에 대해서 성경의 말씀이 이러하건데, 이성의 정체성을 가지거나, 더구나 성전환 수술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이 명확하게 금지하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연세카리스가족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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