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예수님을 소개하고 알려 주는 것이 전도의 궁극적인 목표이고 목적이지 다른 사람을 교회 건물 안에 데려다 놓는 것이 전도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 어떻게 좋았는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전하는 것이 목표다. 그것이 전도다. 전도를 자꾸 어렵게 만들면 안 된다. 마치 수도원에서 엄청난 훈련을 해야 거룩한 사제가 되는 것처럼 전도를 오해하면 안 된다. 과거에 성경을 사제만의 전용으로 여겼던 것처럼 전도를 특정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어려운 일로 여기면 안 된다. 예수님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유언으로 남기지 않으셨고, 모든 성도가 감당할 수 있기에 부탁하셨다. 사실 태신자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하나님보다 먼저 만나게 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 하나님을 보여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다. 태신자는 당신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고, 또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한 모습으로 태신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 그가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서민수 – FISH 전도법
주를 향한 목마름의 간구는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새록새록 생명의 빛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의 자유도 나의 소망도, 세계는 황폐해졌고 신들은 떠나 버렸으며 대지는 파괴되고 인간들은 정체성과 인격을 상실한 시대로 전락했다는 하이데거요 찬송은 태초의 빛을 일으키고 상실한 이 시대를 초록빛 바다로 나의 심연 속에 끌어당기는 것이다. 찬송은 시대를 인도하는 등불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주를 향한 소망을 일으킨 찬송에 나의 육신은 모든 세포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고 노래하였다. 찬연한 대지의 숨결이 내 안에 자라나 나의 몸에는 오곡백과가 만발하였다.
김준식 – 인류구원은 말씀과 찬송에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초기에 그리스 신학자들 사이에 일반적이었던 견해, 즉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선행을 산출하는 영적인 결합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며, 생물학적 산출은 타락 후에 비로소 알려졌다고 보는 견해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가 기독교적 삶에서 진보하자 자신의 견해를 바꾸었다. 아담이 영적인 존재로 변화하는 것은 그가 아들들을 낳은 후에 일어났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점에서 루터는 후기의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받아들였다. 루터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담은 음식과 음료와 생식이 없이는 살 수 없었다. 그러나 성도들의 숫자가 찬 후 예정된 때에 이 육체적 활동은 종결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담은 자기 자손들과 함께 영원하고 영적인 삶으로 변환되었을 것이다.”
이양호 –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와 사상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