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십자가 달리심에 대한 신학적 해석
1. 복음서 저자 요한의 해석
복음서 저자 요한은 예수께서 마리아의 동생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리신 후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공모하여 예수를 죽이려고 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살해 음모에 관하여 요한은 그 해 대제사장 가야바의 말을 인용하면서 예수 죽음에 대하여 신학적 해석을 하고 있다. 가야바는 말한다: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요 11:49-50).
유대종교 지도자들은 예수가 일으킨 하나님 나라 운동을 자신들의 종교적 체제에 대한 위협ㅇ으로 간주하였다. 이들은 예수 운동을 한편으로 유대교 율법과 유전(遺傳)을 해체하고, 다른편으로 로마의 지배에 대항하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신흥종교운동으로 보았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들의 종교적 유전을 지키고, 나아가 점령자 로마 당국으로부터 오는 정치적 책임 추궁을 불식(拂拭)시키기 위하여 예수를 죽이고자 하였다.
이에 반해서 가야바는 대제사장으로서 허세와 냉소와 이기적 의식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예수의 죽음이 함축하는 대리(代理)적 의미에 관하여 예언하고 있다.(요한복음 11장 45절-53절 해설, 『해설•관주 성경전서』, 독일성서공회판, 247.) 가야바는 나사렛 출신의 예수를 냉소하고 멸시하면서 그가 희생되면 민중들의 반란이 일어나지 않고 나라가 평온하여 산헤드린 공회에 속한 유대의 특권계급 지위가 안전하게 보존될 것이라고 이기적이고 정치적 의미를 생각한 것이다.
이 가야바의 말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예수 죽음의 구속사적 사실,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실 것이라는 구속사적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요 11:51-2).
여기에 인간이 유대인 종교차원에서 생각하는 사고와 행하는 행동을 그의 주권으로 관장(管掌)하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의 간섭이 있다.
2. 죄 사(赦)함의 언약 종교: 대속(代贖)의 종교
예수는 최후 만찬 시에 성찬식을 통하여 그가 당하실 십자가 죽음으로 죄 사함을 받는 진리를 제자들에게 교훈해주신다. 예수는 떡과 잔을 나누어 주시면서 이것이 바로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한다고 증언하신다: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떡과 피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찢기시는 몸과 흘리시는 피, 즉 예수의 생명을 상징한다. 죄인인 인류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하나님 아들의 희생제물이 필요하다.
히브리서 저자는 레위기 17장 11절을 따라서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라고 증언하고 있다.
구약시대에는 성전에서 짐승을 죽여서 희생제물로 드리고 그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써 제물드린 자가 범한 죄를 속(贖)함 받았다. 구약의 희생제사는 옛 언약으로서 다가오는 새 언약의 그림자였다. 히브리서 저자는 다음같이 증언한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히 9:12-13).
신약의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은 죄의 사(赦)함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다음같이 증언한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 9:14-15).
우리의 죄는 어린 양 되시는 예수께서 자기 생명을 드리신 속죄제물로 인하여 사(赦)함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고난의 종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목적이다.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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