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롬 5:15, 20~21)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읅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1. 기회가 있다?

요즘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양심의 가책을 심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두 가지 원인이 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죄가 죄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죄를 지어도 만회할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는 이상한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작고하신 R.C. 스프로울 목사는 사람들이 “누구에게나 또 한 번의 기회는 있다”는 식으로 죄의 결과를 얼버무리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또 하나의 이유를 추가하고 싶은데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나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그렇게 죄를 짓는다”며 자신의 죄를 보편적인 현상으로 치부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면 일시적으로 심리적인 안정은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는 죄입니다. 죄는 형벌이라는 값을 치루지 않고선 사라지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짓든, 나만 죄를 짓든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으므로 모든 사람이 죄의 형벌을 면제받는 것이 아닙니다. 미안하지만 지옥의 감방수는 무한합니다. 아담 이래로 태어난 모든 인간들을 다 채우고도 넉넉하게 남아돕니다. 분명한 것은 지옥은 왔다 갔다 드나드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에 한 번 들어가면 끝입니다. 다시는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고 지옥 판결을 받고서도 또 한 번의 기회를 달라고 떼를 쓴다 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엄격한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지옥에 가고 안 가고는 이 정의의 원칙에 따라 적용됩니다. 기회를 달라고 매달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은 이 정의의 기준과 원칙 안에서 작동하십니다. 정의는 모든 것의 중심입니다. 어떤 것이 정의로운가, 아닌가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나라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의는 모든 판단과 재판과 심판의 기준이자 핵심입니다. 이 정의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죄하신 분이며 완전하시고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의로운 판결을 선포하고 결정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이 정의로운 원칙에 따라 구원이 이루어질 것을 미리 작정하시고 그 계획과 뜻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때에 맞추어 적용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은혜를 받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에게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이 때 하나님의 양들은 이 목소리를 듣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선포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한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 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분 안에서 그분을 철저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가리키는 곳을 향하여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분의 가르침대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분 안에서 영원히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그분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대로 팥 밭에 가서 콩을 얻을 수 없듯이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해야 합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구원의 복음을 듣는다면 즉시로 주님에게로 달려오십시오. 오늘 소개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이 말씀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자녀라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지금도 이렇게 간절히 죄인을 향해 자신에게로 돌아오라고 간청하십니다. 죄인을 향해 무조건적이고 강압적으로 구원을 받으라고 하시지 않고 가장 정당한 방법으로 죄인의 자발적인 응대를 기대하며 변론의 자리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무엇이 변론입니까? 변론(Debating)은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다투는 것입니다. 논쟁하고 토론하는 것입니다. 실상 죄인은 할 말이 없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죄인의 입을 막지 않으시고 죄인의 생각과 주장을 들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쳐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는 속담대로 죄를 지은 것에 대한 이유를 먼저 경청하겠다는 것을 밝히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죄인이 죄에 대해 소명한 것이 합당하고 정의롭다 하여 죄를 사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인의 말은 그저 변명에 불과합니다. 죄는 합당한 이유를 가지지 않습니다. 죄가 합당하면 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주홍빛같이 붉은 죄를 하얗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얗게 만든다는 것은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만들어주신다는 뜻입니다.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없이 무조건 깨끗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공로나 선행이나 자격 없는 나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을 공짜로 제공해주는 것, 이것을 우리가 무엇이라 부릅니까?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계속)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