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정의한다.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단서라는 것이다. 누구도 하나님과 영적 세계를 보여 줄 수도, 증명해 보일 수도 없다. 초월자 하나님은 인간의 가시권에 계신 분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에 관한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만물에 대한 과학적 판단들은 여러 모양으로 진화론을 가리킨다고 하지만 우리는 과학이 가리키는 것을 보지 않고 성경이 가리키는 하나님의 창조를 받아들인다. 이것이 믿음의 힘이다. 신앙의 위인들은 경배 대상으로서의 유일신 하나님을 ‘반드시’ 믿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사탄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약 2:19). 하나님이 계신 것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가?’를 말한다. 하늘님, 하느님, 신령님 같은 하나님 짝퉁 계열의 천신(天神)들의 허상을 수용한다고 그것이 구원에 이르는 참 믿음은 아니다.
강정훈 – 그래도,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설교를 통해 단순히 하나님에 관해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듣고 만나는 것이라는 사실은 설교에 대한 우리의 바람을 바꾸어 놓는다. 회중에게 이 사실은 설교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만남을 다른 어떤 곳에서 찾기를 바라면서 그저 훈계의 시간을 지루하게 견디는 대신, 회중은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다. 또한 설교자에게 이와 같은 설교의 실체는 겸손하게 하는 동시에 강건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설교자가 자신이 자기 주인의 사신이요 청지기로서 강단에 선다는 사실을 알 때, 자신의 잘남을 뽐내려는 모든 바람은 사라지고, 자아에 대한 신뢰가 어리석은 일로 여겨진다. 동시에 소심한 설교자의 불안한 신경과 연약한 무릎은 힘을 얻게 된다. 자신이 어떻게 느끼든 자신은 대언자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경험이 풍부하든 그렇지 않든 설교자는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다. 회중 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설교자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마이클 리브스 – 마이클 리브스의 설교자의 심장
사도행전 13장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고 지칭했습니다. 사도행전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칭찬받는 표현의 의미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사람, 즉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었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았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알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그리스도론은 신학에서 중요한 주제이며 성경의 핵심 주제입니다.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시하고 있는 구원자는 인류를 위하여 일찍 유월절 어린양으로 속죄의 희생양이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박진석 – 생선 아카데미 그리스도론 1: 삼위일체 하나님과 메시아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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