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 유튜버가 36주 된 자신의 태아를 병원에서 낙태한 경험을 유튜브에 올린 사건의 충격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경찰은 이 여성의 낙태 수술을 집도하고 태아를 화장한 병원과 병원장 등 의료진의 불법 여부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만약 36주 태아가 살아있는 채로 태어나 유기 화장되었다면 관련자들에게 살인죄 적용도 가능하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6월 유튜브에 ‘총 수술비용 900만원, 지옥 같던 120시간’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오면서 시작됐다. 이후 이 영상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36주 태아 낙태 브이로그’라는 제목으로 퍼져나갔다.
해당 영상이 파문을 일으키자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12일 산모와 수술 의사를 살인 등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경찰은 유튜브 영상 자체 분석과 관계 기관 협조로 이 영상을 올린 유튜버를 특정하고 병원을 확인했다. 이어 지난달 말 압수수색을 거쳐 해당 유튜버와 병원장을 피의자로 입건한 상태다.
경찰은 이 여성이 지난 6월 25~26일경 해당 병원에서 낙태 수술을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수사 범위를 좁혀 왔다. 낙태 수술을 집도한 병원장은 경찰에 이 여성의 뱃속 36주 태아가 죽은 채로 태어났다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태아가 살아있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병원 측이 사산을 주장하는 근거는 화장 업체에 제출한 사산증명서. 진료기록부에도 사산으로 기록돼 있다. 사산한 태아의 시신을 절차에 따라 화장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게 병원 측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병원 측이 처벌을 피하려고 관련 서류를 조작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병원장 등 의료진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6월 말 낙태 수술 후 죽은 태아를 20일 가까이나 방치했었다는 말이 된다. 사산한 태아를 그렇게 오래 처리하지 않고 있다가 화장할 이유가 없다. 경찰이 수상하게 여기는 것이 이 부분이다. 병원 측이 의료폐기물로 태아 시신을 처리하고 나서 수사가 개시되자 증거를 없앨 목적으로 화장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임신 4개월 이전의 사산아는 통상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의료폐기물로 간주돼 처리된다. 30주 이상 된 태아를 낙태 수술하는 병원들도 대부분 비용이 많이 드는 화장보다 의료폐기물로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죽은 태아를 20일이나 방치하다가 뒤늦게 화장 처리했다는 병원 측의 주장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2019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낙태죄에 대한 처벌 근거가 사라졌다. 하지만 36주 태아는 출산 후 독립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만약 살아있는 채로 출산한 아기를 유기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면 이는 살인 행위에 해당한다. 경찰이 해당 여성과 병원장을 살인죄로 입건한 이유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지난 2019년 서울의 한 산부인과에서 있었다. 해당 병원에서 34주 태아를 낙태 수술했는데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아기를 의사가 물에 넣어 질식사시킨 혐의가 입증돼 담당 의사에게 살인 유죄가 확정된 바 있다.
경찰이 36주 태아 낙태 사건의 관련자를 살인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지만 이들의 죄가 입증된 건 아니다. 관련 서류를 조작한 정황이 있지만, 결정적인 증거인 태아가 소각 처리돼 사라진 게 걸림돌이다.
하지만 아기를 사산한 게 아니라는 증거는 그 여성이 올린 유튜브 영상에 나와 있다. 여성 유튜버가 자신이 임신 36주에 태아 낙태 수술비용으로 900만원이 들었고, 120시간 지옥같은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지만, 그 어디에도 아기를 사산했다는 언급은 없다. 이건 뱃속 태아가 사망해서 어쩔 수 없이 수술을 받은 게 아니란 사실을 말해준다. 불법이 아닌 일반 산부인과 수술이라면 수술비가 900만원이나 들 리 없지 않은가.
지금 이 사건의 논점은 ‘낙태’냐, ‘살인’이냐로 모이는 분위기다. 낙태죄 처벌 근거가 사라진 시점에서 관련자들의 불법 행위를 처벌하려면 아기를 낳아 사망에 이르게 한 증거가 입증돼야 하고 그래야 낙태죄가 아닌 살인죄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논점엔 처음부터 ‘낙태는 살인’이라는 명제가 빠져있다. 주수가 문제가 아니라 태아는 여성의 뱃속에 잉태하는 순간부터 한 생명으로 보호·존중되어야 마땅하다. 하물며 36주의 태아는 거의 만삭으로 출산이 임박한 아기다. 엄마 뱃속에서 다 자라 곧 세상에 나올 아기의 생명을 무참히 빼앗은 ‘살인’ 행위를 ‘낙태’라는 이름 뒤에 숨도록 내버려 둘 순 없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중요한 대목이 있다. 우리 사회에 이런 비정한 범죄가 반복되는 근본 원인이 관련법 부재에 있다는 점이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국회는 아직까지 낙태 관련법, 태아보호법 등 관련법을 만들지 않고 있다. 국회가 국민 생명을 보호할 의무에 태만함으로써 이런 독버섯이 음지에 마구 자라도록 자양분을 제공한 셈이다.
그 아기가 산모와 의료진의 보살핌 속에 태어났다면 한 사람의 인격체로 건강하게 성장했을 것이다. 그런 아기의 생명을 죽이는데 산모와 의사가 공모했다면 이들은 살인죄로 엄벌에 처해 마땅하다. 국회는 이런 극악 범죄가 우리 사회에 확산하도록 방조한 책임을 무겁게 인식하고 관련 입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