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5월까지 자살 사망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추세라면 2020년 이후 가장 많은 자살 사망자 수를 기록한 지난해 수치를 능가할 것으로 예상돼 대책이 시급하다.
7일 보건복지부가 집계해 발표한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자살 사망자 수는 총 6,375명.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1% 증가한 숫자라는 점에서 심각성하다. 자살로 숨을 거둔 사람이 하루 평균 41.9명이라는 건데 그대로 방치할 경우 ‘자살공화국’이란 오명에서 영영 벗어날 길이 없게 될 것이다.
11년 전인 2013년, 우리나라 자살 사망자 수는 1만4천427명,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8.5명으로 최고치에 도달했다. 그 후 2022년까지 매해 조금 씩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다시 급증하며 전체 자살사망자 수 1만3천770명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보다 864명(6.7%) 증가한 수치로 2020년 이후 가장 높은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정부는 최근 자살 사망자 급증 원인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목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사회적 고립과 경제난, 우울·불안 증가 등의 요인이 자살사망자 수 증가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또 유명 연예인의 자살사망 사건 이후 7∼8주간 '모방자살'이 증가한 것이 올 상반기 자살률 증가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자료는 자살이 증가하는 사회적 원인을 분석하는 정도에 그친 인상이 짙다.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냈으면 자살을 줄일 수 있는 대책과 방안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문제는 처방이 자살 방지의 실질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살 사망자가 다시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자 급기야 정부와 사회 각계 민간기관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지난 6일 서울 모 호텔에서 제7차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가 열렸는데 자살 대응을 위한 협력 방안이 주로 논의됐다.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는 지난 2018년 자살 방지 대책을 위해 보건복지부 등 6개 정부 부처와 종교계·재계·노동계·언론계 등 37개 민간기관이 참여해 만든 협의체다. 이번 모임에서 복지부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일어난 자살사망 동향과 이에 대응하는 정부 정책에 대해 보고하고 민간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정부 관계자는 △자살예방 실천 메시지 홍보, △모방자살 방지를 위한 보도환경 개선, △자살예방 교육 의무화, △자살 시도자 등 고위험군 발굴 강화 등 주요 추진과제를 설명했다. 종교계는 7대 종단의 생명사랑 희망 메시지와 대국민 캠페인을, 민간기관은 재계·노동계의 청년층 대상 자살예방사업 홍보와 생명존중 콘서트 등의 성과를 공유했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처음 세계 1위를 기록한 건 지난 1998년이었다. 당시 충격적인 기록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충격과 반향이 차츰 무뎌져 가는 분위기다. 지난 26년간 줄곧 이런 추세가 이어지자 이젠 ‘자살공화국’이란 오명을 씻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점점 굳어지는 게 아닐까.
우리나라는 6.25 전쟁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아픔이 있었지만 내전이나 뚜렷한 분쟁 상황 없이 발전해 왔다. 그런데도 중동의 내전이 빈번한 국가들보다 더 많은 국민이 해마다 죽어가고 있다. 중동 지역의 내전으로 죽는 사람이 국가 당 1500명에 못 미치는 데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매년 13000명이나 죽고 있으니 이런 비극도 따로 없다.
문제는 자살을 국가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사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다. 비극을 지나치게 집단화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개인사로 여겨 개입하지 않고 방조 방치하는 건 더 큰 불행을 낳게 된다.
가까운 예로 서이초 교사 자살사건이 발생했을 때 온 사회가 교권 추락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공동체 붕괴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걸 간과하고 있다. 내 아이만 잘되면 된다는 그릇된 인식이 자녀를 가르치는 교사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결국 아이와 부모가 비난을 받았으나 따지고 보면 가해자는 그렇게 만든 사회인 것이다.
복지가 보편화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전에 자살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하지만 국가와 사회가 힘을 합해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비로소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10년 넘게 자살률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자살 예방에 쓰는 정부 예산은 미국 뉴욕주 예산에 2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심지어 일본 도쿄도 예산에 10분의 1 수준으로 자살 방지 대책을 세우고 있으니 그 결과를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입해도 다 해결할 수는 없다. 복지가 도움이 될 순 있어도 근원적인 치유책이 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생명 존중에 앞장 서 온 종교계와 한국교회가 할 일이 더 많다. 특히 한국교회는 자살을 방조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일을 선교적 과제로 삼아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고 하셨다. 하늘과 땅을 준대도 목숨과는 바꿀 수 없을 만큼 귀하다는 뜻이다. ‘자살공화국’, ‘낙태 천국’은 대한민국의 오명이기 전에 한국교회로 하여금 고개를 둘 수 없게 만든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한국교회에 묻는다. 너희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목숨을 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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