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성 소수자와 트렌스젠더를 등장시켜 전 세계 기독교인으로부터 신성 모독, 외설 비판을 받은 파리올림픽이 이번엔 남성의 염색체를 가진 선수를 여성으로 출전시켜 여성 폭력,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다.

여자 복싱 66㎏급에 출전한 이마네 칼리프(26·알제리)와 57㎏급에 출전한 린위팅(28·대만) 이 두 선수는 남성인 XY 염색체를 가진 여성 선수로 이번 올림픽에 출전했다. 이 중 칼리프는 이탈리아 안젤라 칼리니 선수와의 경기에서 46초 만에 승리를 거두었다. 칼리니 선수가 칼리프 선수의 펀치를 안면에 맞은 뒤에 스스로 시합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칼리니 선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며 “내 목숨을 지켜야 했다.”고 말했다. 상대인 칼리프 선수의 펀치가 죽음이 생각날 정도로 공포스러웠다는 뜻이다.

국가를 대표해 올림픽에 나온 여성복서라면 일반 여성과는 다른 체력과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선수가 얼굴에 주먹 한 대 맞고 경기를 기권했다는 건 단순한 기량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처음부터 여성과 여성이 겨루는 공정한 시합이 아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경기를 지켜본 많은 시청자들이 공분했다. 남성이 여성을 일방적으로 구타하는 장면에 충격을 받았기 의견이 주를 이뤘다. 무엇보다 공정해야 할 올림픽이 잔인한 폭력을 방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 건 그 때문이다.

성별 논란에 휩싸인 칼리프는 4일 오전(한국시간) 허모리(헝가리) 선수와의 8강전에서 5-0 판정승을 거두고 동메달을 확보했다. 오는 7일 태국 선수와 결승전 진출을 다투게 되는데 만약 이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선천적으로 남성 XY염색체를 지니고 태어난 여성복서가 올림픽 결승에 진출하는 최초의 사건이 된다.

남성 염색체를 가진 칼리프가 여성 복싱대회에 참가해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23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성별 문제가 크게 불거져 결승전을 앞두고 국제복싱협회(IBA)으로부터 실격 처분을 받았다. 당시 IBA 회장은 언론에 “칼리프와 린위팅은 XY염색체를 갖고 있다”며 남성 염색체를 가진 선수가 여자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성별 문제로 실격 처분을 받았던 선수가 파리 올림픽에 정상 출전 자격을 얻게 되면서 논란이 일찌감치 재 점화됐다. 그러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칼리프와 린위팅이 IOC의 모든 규정을 준수했다며 염색체만으로 두 선수의 성별을 결정지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파리올림픽 직전 2020 도쿄 올림픽에선 성전환 수술을 받고 남성에서 여성이 된 선수가 여자 역도 종목에 출전해 논란의 중심이 된 바 있다. 이 선수는 남자로 태어나 남자로 살아오다 올림픽을 앞두고 여자로 성전환 수술을 했다. 그런 성 전환자에게 IOC가 올림픽 참가 자격을 준 유일한 근거가 호르몬 수치였다.

IOC는 지난 2004년 5월 스톡홀름 합의를 통해 성전환 수술을 받은 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했다. 그런데 이 기준이 갈수록 낮아지면서 남녀 성별 구분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게 문제다. IOC가 지난 2021년 11월 그 이전까지 성전환 선수들에게 적용되던 ‘테스토스테론 혈중 농도 기준’을 아예 없앤 권고안을 발표했는데 결과적으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 전환한 선수를 상대해야 하는 여성 선수에겐 일방적으로 불리한 규정이 되고만 것이다.

IOC는 성별 논란에 따른 비판이 쏟아지자 호르몬 수치만으로 경기력을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 전환 선수 출전 규정은 호르몬 수치가 아닌 성 전환이 실제 경기력 우위로 이어졌다는 ‘경험적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건 데 남성 염색체를 가진 권투 선수가 여성 선수를 펀치 한방으로 포기하게 만든 것이 ‘경험적 증거’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IOC의 주장이 합리적이라면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 전환한 사람이 대회에 참가하는 수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 전환한 사람과 비슷해야 한다. 그런데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 전환해 남성으로 올림픽이나 국제대회에 출전한 선수는 아직까지 단 한사람도 없다. 이런 ‘경험적 증거’를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IOC가 젠더주의에 기울어 공정성을 망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만하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의 성별 논란이 이것이 다가 아니다. 이번 파리올림픽에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출전한 선수가 191명으로 역대 최대로 집계됐다. 동성애자를 비롯해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 ‘성 소수자’가 남녀 구분이 엄격한 스포츠대회에까지 파고든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밝힌 선수는 단 5명 뿐이었다, 그런데 20여년 만에 38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처럼 많은 선수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한 건 아무래도 파리올림픽이 지향하는 다양성과 포용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파리올림픽 주최측은 인종과 신조, 종교, 성정체성, 성적 지향, 국적에 대한 차별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성전환자의 참여에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올림픽은 공정한 룰에 따른 시합으로 순위를 정하는 스포츠 경기가 우선이 아니던가. 스포츠맨십이 사라진 경기장에 성적 지향만 남으면 올림픽 정신과 무관한 성 소수자 잔치마당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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