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성 박사
양기성 박사

인간들의 삶의 자세들을 분류해 보면, 대부분 크게 2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인류에 선한 일이나 가치 있는 일에 기여하거나, 또는 사회질서를, 나아가 바른 정신사고를 세워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무엇에선가 이웃에 불행을 만들어 어려움이나, 손해를 끼치며 사는 사람이 있다. 법이나 질서를 잘 지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사회적 분란을 만들고, 국가 차원에서는 심지어 전쟁까지 일으켜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나 재산을 잃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도 있다. 전자는 역사를 세우는 자요, 후자는 역사를 허무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역사를 허무는 자들

20세기 들어와 인간 사회정신, 생활양식에 혼란을 끼친 철학자들이 있다. 예를 들면, 결혼은 꼭 남성이 여성과 해야만 하는가 하기도 하고, 그래서 같은 성 끼리도 할 수 있다 말하기도 하고, 또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사고방식, 규칙, 규범 같은 것을 깨트리는 그런 주장을 하기도 한다. 나아가 세상에 절대적 진리란 없다거나, 도덕이니, 전통이니 뭐니 해도 그런 것에 얽매일 필요 없이 자신 개성대로 자유롭게 살 것을 강조했다. 쉽게 말하면 고정관념 깨기를 시도하여 가치관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철학자들의 주장들은, 소위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불행하게도 신학계에서도 물이들어 혼란을 겪게 되었다. 서구의 어느 여성신학자는 “왜 남성위주의 신학만 하느냐” 그렇게 주장하여 여성신학을 만들기도 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 아버지”를 “하나님 어머니”라, 또 주 기도문을 한다면,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 이렇게 하게 된다.

요즈음, 모 신학대학교 모 교수가 유신진화론을 주장하여 한국 온 신학계가 시끄럽다. 전통 기독교 창조론을 말하면서 슬그머니 진화론을 강조하는 것인데, 이에 그가 속한 교단에서는 유신진화론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한창이다. 왜? 정통 성경교리를 무너트리는 내용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밖에 악을 도모하는 일, 그리고 그에 대한 담합, 인간이나 사회적 가치를 세우는 것을 방해하는 것, 주어진 말씀보다 인간을 먼저 내세우는 것이 거짓임에도 침묵하는 것 등은 역사를 허무는 일들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신이 되다

21세기를 강타한 책이 있다. 유발 하라리가 쓴 “호모 데우스(Homo Deus)”다. 이 책의 내용을 단 한마디로 줄이면 “신 같은 인간” “신이 된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하나님이 자연과 인간역사를 주관하는 것이 아닌, 과학문명을 창조한 인간이 신이 되어 자연과 우주, 인간 역사를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제는 인간 자신이 신이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몇몇 사회에서 발생한 현상들은 인류의 정신을 이끌어 온 성경, 그 진리와 전통을 무시하는 것으로 역사를 파괴하는 행동들이라 말할 수 있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말하면, 초대 교부들이 목숨을 걸고 세워 놓은 신학교리들, 그리고 중세 역시 죽음을 무릅쓰고 세워 놓은 개혁자들의 정신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처사로 역사를 허무는 자들이라 말 할 수 있다.

역사를 세우는자

요한복음 2:13~17을 보면, 예수께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신 말씀이 나온다. 물론,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내면 상징적으로 표현하신 것이지만, 실제적으로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의 모습을 보고 어처구니 없어 한탄하여 하시는 말씀이다.

역사 파괴자들은 이렇게 해석 할 것이다: “성전을 허물라고 하는 예수 당신이 역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닌가? 이 성전은 46년 동안이나 지은 것인데 그것을 허물어?”

하지만, 예수님은 선하고 옳은 것을 파괴하시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파괴하고 다시 바로 세우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흔히 말하는 “창조적 파괴”를 감행하신 것이다.

형식적인 것과 거짓의 것을 허물어 버리고, 진실을 세우시고자 하신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교묘하게 성경 말씀보다 인간적 논리를 주장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고, 욕되게 하는 일들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본다. 사람이나 헌금이 많은 것을 자랑하고, 번지르한 건물 세우기에만 정신이 없는 목회 행태같은 것을 없애기 위해, 오히려 새로운 역사를 세우기 위해 예수님은 “성전을 헐라” 말씀하신 것이다.

역사 세우기에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엘리야 시대에는 우상숭배가 많았다. 아합왕 치리 때는 이방 여인이었던 왕의 부인 이세벨이 그가 믿던 바알과 아세라 신 지도자를 왕궁에까지 불러들여 우상을 숭배할 정도였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어서는 안 되었는데, 그런 성경 말씀의 역사를 우상숭배자들이 무너트린 것이다. 이때, 엘리야가 3년 동안 영성훈련의 도를 쌓아 힘(Spiritual Power)을 얻은 후, 갈멜산에서 850명의 우상숭배지도자들과 한판승부를 벌였다. 저쪽은 850명, 이쪽은 엘리야 단 한사람, 즉 850:1의 싸움이다. 결국, 혼자서 우상숭배자들을 처단하였다. 그런 결과, 이스라엘은 허물어져 가는 정신으로부터 다시 야훼 하나님을 신앙하는 역사를 세워 나가게 되었다.

주후 410년, 고트족이 로마를 침략해 들어와 점령했다. 313년에 기독교를 허락한지 거의 100년만에 고트족의 침략을 받아 로마가 망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때 로마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한 비난을 많이 쏟아 냈다. “아니, 태양신을 섬기고, 제우스를 숭상할 때 국가는 제국화되어 부국강병으로 잘사는 나라가 되었는데, 기독교를 믿으니 나라가 침략을 받아 망하게 되었다.” 이때 하나님은 많은 사람이 아닌 단 한 사람을 세우셨다. 그는 어거스틴으로서 “신국”이라는 책을 썼는데, 요지는 “인간의 나라는 망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 무궁하다”라는 것이다.

루터 한 사람이 죽음을 무릅쓰고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새 신앙의 역사를 창조한 것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한다. 나머지는 다 방관자들이었다. 혜택만 받고, 오히려 큰 소리치는 자들이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에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보라! 역사를 통해 힘과 능력을 자랑하던 개인이나 국가는 다 허물어져 멸망해 버렸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과 영광은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지금까지 세워가고 있지 않는가? 인간들은 역사를 허물어 가지만, 그리고 그 역사와 함께 사라져 가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날마다 새롭게 역사를 세워간다. 그것도 영원 무궁토록 말이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아가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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