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불쾌증(gender dysphoria)은 미국 정신의학회가 제시한 트랜스젠더의 새로운 이름이다. 이전에는 젠더정체성장애라 했고, 그전에는 성정체성장애 또 그전에는 성전환증이라 했다. 결국은 모두 같은 의미이지만, 강조하는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무엇보다 젠더불쾌증은 더 이상 정신장애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개념이 급변하면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성혁명, 젠더 혁명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제대로 이 사태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우리 자신과 가정을 지킬 수 있다.
성전환증은 20세기 전반까지는 이를 단순하게 그 자체가 성도착증인 병으로 보았다. 이는 단순히 자신의 성을 의학적 기술로 반대로 바꾸기를 원하는 경우이다. 관련된 다른 신체적, 정신적, 병리 문제는 고려되지 않았다.
1960년대 존 머니의 젠더 실험이 유명해지면서 성을 젠더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 개념을 우리는 비판하는데, 그, 이유는 젠더는 인위적인 개념으로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머니의 젠더 실험을 허구로 끝났다. 그럼에도 굳이 성정체성 대신 젠더정체성, 젠더역할, 젠더 표현 같은 표현이 필요한 것은 이제 보면 페미니즘과 트랜스젠더를 옹호하기 위함이었다
성을 젠더로 부르면서 젠더정체성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그리하여 1980년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 제3판(DSM-III)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정신장애의 의미를 가진 성전환증의 개념이 포함된 “젠더정체성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 GID)라는 병명으로 나타난다.
우선, 정체성(identity)이란, 에릭 에릭슨에 의하면, 개인이 인생에서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움직이게 하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내적 동일시(identification)와 지속성이다. 이는 본질상 정신사회적이며, (생물학적이 아니다) 개인의 사회적 맥락에 의해 제공되는 기회와 지지와 결합하여, 개인의 생물학적 및 정신적 기능이 상호교차하면서 형성된다. 에릭슨에 의하면 정체성은 “발달”한다. 특히 정체성은 청소년기 핵심 관심사로서, 미래의 직업, 이데올로기, 관계성 이슈에 관련된 결정에 관련된다. 그러나 정체성은 성인기에도 반조와 수정의 과정을 거치며 변화한다. 즉 정체성은 한번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 청소년기에 끝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체성은 평생 변화한다. 즉 국가, 가문 또는 종교적 정체성은 바뀔 수 있다. 성은 바뀔 수 없지만 젠더정체성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LGBTQ옹호자들은 트랜스젠더나 동성애는 피부색처럼 평생 바뀌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1994년 미국의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 DSM-IV에서도 여전히 병적인 성전환증의 개념이 보존된 GID로 나타난다. 2000년 DSM-IV-TR에서는 GID가 Sexual Disorders 범주에 그 한 아형으로 포함되었다.
GID는 종래의 성전환증을 포함하는데, 일시적으로 그런게 아니라, 강하고 지속적으로 반대성으로 동일시하고 불안, 우울증, 불안정, 으스스한 느낌(malaise), 그리고 무엇보다도 “출생시 지정된 성과 다른 젠더에 속한다는 느낌과 그에 따라 살려는 강한 욕구”를 가진다고 정의된다. 즉 정신병리가 동반된 정신장애라는 것이다.
DSM-IV에서 젠더정체성 장애(GID)의 진단기준은 더욱 정교해졌는데. ① 강하고 지속적으로 반대성의 정체성을 가짐, ② 이는 단순히 반대성에 관련된 어떤 문화적 이점에 대한 욕구가 아니어야 함, ③ 자신의 생물학적 섹스에 대해 지속적인 불안감(malaise) 또는 무연고감 상태의 증거가 있어야 함, ④ 반대의 성(sex)에 속한다는 강한 욕구. ⑤ 간성(intersex) 상태가 아니어야 함, ⑥ 반대 젠더의 일원으로 취급받아야 한다는 강한 욕구, 사회적, 직업적 및 대인관계적 관계에서 임상적으로 현저한 고통 및 장애가 있어야 함.
2013년 DSM-5에서는 젠더정체성장애는 젠더불쾌증으로 바뀌었다. 이는 젠더정체성이 자신의 몸과 달라 불쾌하다 또는 괴롭다는 의미이다. 전형적 표현은 젠더불쾌증을 가진 사람은 자신은 어떤 생물학적 사고의 피해자로서, 자신들의 삶은 주관적 젠더정체성과 맞지 않은 신체에 무자비하게 갇혀 있다고 느낀다. 이 개념에는 정체성 문제보다 “불쾌” 감정에 초점이 있다. 진단기준의 특징은, 경험하는 또는 표현하는 젠더가 자신의 타고난 일차적 및 이차적 성징과 달라, 강하게 그 성징들을 제거하고 싶고, (성징이 발달하는 것을 막고 싶고), 반대성의 특징들을 강하게 가지고 싶고. 강하게 다른 젠더가 되고 싶고, 강하게 다른 젠더로 대우받고 싶고. 다른 젠더의 전형적인 느낌과 반응을 가진다는 강한 확신이 있다. 이 상태는 또한 임상적으로 사회적, 직업적 및 기타 기능의 중요 분야에서 임상적으로 유의한 고통과 장애와 관련된다. 특정형으로 발달 장애와 같이 공존하는 경우와 post-transitional 일 경우가 있다. 즉 하루 종일 원하는 다른 젠더로 삶(법적 지정 상관없이), 원하는 젠더로의 한 가지 종류 이상의 성전횐 시술을 준비하거나 시행하거나 시행된 후 즉 원하는 젠더를 확인하기 위한 정기적 성호르몬 또는 성재지정수술, (예. 출생시 남자로 지정된 사람의 음경제거, 또는 질성형. 출생시 여자로 지정된 사람의 유방제거 또는 음경성형).
불쾌증이란 증상의 명칭이기 때문에, 젠더불쾌증은 정신장애가 아니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이로써 트랜스젠더는 더 이상 정체성장애가 아니게 되었고, 성장애도 아니게 되었다. 이 장애에는 트렌스젠더, 젠더퀴어, 모두를 포함한다.
이렇게 병명을 고침으로 이 불쾌증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지 정체성을 시스젠더로 바꿀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트랜스젠더임을 확인해주고 지지해 주고, 성전환시술을 해 줌으로 불쾌증을 없애주는 것이 인권차원에서 정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성을 전환시켜 주는 의학적 기술은 없기 때문에 성전환시술을 인정해 주는 것은 일종 사기이다.
기본적으로 트래스젠더나 젠더퀴어는 과학 내지 생물학적으로는 어불성설이다. 인위적인 것을 실제적이라고 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그런 비과학도 사람들이 인정해주면 진리로 받아들여 진다. 여론, 공감, 담론 등등이 진리가 된다는 의미이다. 절대적 진리란 없는 것이고, 인간들이 합의해서 결정하면 그게 진리라는 의미이다. 이런 생각은 인간이 충분히 지혜롭고 또한 합리적이어서 인간이 인간사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 개인 역시 자신의 일은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철학사조에 근거한다. 미국 정신의학회는 과학보다 문화적 풍조에 굴복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경우든 공감을 표하라는 요즘 사회 문화적 담론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런 자기결정권 같은 현대 풍조를 크리스천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 문화권의 세속적 여론은 전체 인류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소수의 엘리트들이 주장하고 동조하고 합의했을 뿐이다. 다수 대중들은 뭐가 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보통 사람이라도 자기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여자라고 커밍아웃하면 기절초풍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느 새 학교에서 그렇게 해도 된다고 배웠고, 신문방송에서도 이미 그런 것은 괜찮다고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이런 변화를 보통 사람들이 찬성한단 말인가? 트랜스젠더를 정상화하는 것은 의학적 근거도 없고, 성경말씀과도 어긋난다. 그래서 이런 모르는 새 급격한 변화를 성 혁명이라 하는 것이다.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연세카리스가족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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