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저는 상습적인 술꾼, 술집 순례자, 끽연자, 까탈스럽고 잔소리하기 좋아하는 남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2002년 크리스마스 성탄절 날, 저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는 마침 성찬 예식이 있어 조그마한 잔에 들어있는 한 모금의 빨간 포도주를 마시는 순간이었어요. 전날 마신 술로 약간 덜 깬 채, 저는 조용히 하나님과 제 속의 자신에게 무언가 말하고 있는 저 자신을 알게 되었어요. “오! 주님! 이 순간부터는 제가 지난 30년간 즐기던 술과 담배를 끊으려 합니다.” 동시에 저는 체험하기 시작했어요.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수많은 이적들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께서 제 인생에 깊이 관여하고 계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어요. 정확히 30년 즐기던 술과 담배가 어느 순간 끊어지질 않나, 안면도 없는 교회 집사님 내외가 나타나시더니 생각지도 못하던 영어학원을 하라고 권하여 8년 반을 무상으로 지내게 된 사건, 학원의 거의 모든 기물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서 얻게 되는 이적, 등등을 보고, 겪고 경험하면서요. 저의 죄를 생각하면 만날 수 없는 그분을.
박승춘 – 방황, 간증, 그리고 믿음
우상 숭배란 그릇된 대상을 바라보고 경탄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의 진짜 위험 요소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미묘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서구권 그리스도인들이 씨름하는 문제가 어떤 석상이나 조각상들 앞에서 절하는 데 있지 않음을 안다. 오히려 그 문제는 섹스나 돈, 권력 혹은 명성 같은 것들을 추구하려는 마음에 있다. 그리고 신앙 안에서 자라 가면서,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삼가는 법을 조금씩 터득하게 된다. 하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들까지도 걸려 넘어지는 문제가 있으니, ‘우상 숭배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바깥에 머문다’고 생각하는 착각이다. 그러나 실제로, 가장 위험한 우상 숭배는 바로 그 예배의 행위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은혜에 관한 어떤 설명을 들을 때, 여러분은 ‘그러면 굳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구할 필요가 없겠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진실에서 너무나 먼 생각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그분의 도우심을 절실히 바라는 상황에 있음을 전제로 삼는다. 모든 시간과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애쓰다가 철저히 실패하기 전까지는, 은혜가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헤아릴 수 없다.
A. J 컬프, 크레이드 바르톨로뮤, 데이비드 벨드먼 – 하나님을 알도록 초대받다: 신명기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태어나고 자라고 삶을 사셨기에 우리를 이해할 수 있고, 동정하실 수 있어요. 예를 들어볼게요. 선거철이 되면 많은 정치인이 재래시장을 방문합니다. 그러고는 떡볶이도 먹고, 어묵도 먹고, 붕어빵도 먹고, 국밥도 먹습니다. 왜 그럴까요? 유권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저도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알아요. 저를 뽑아 주세요!”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들도 다 압니다. 그들에게 온전히 이해받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왜냐하면 그들이 ‘born to be 서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오신 거예요.
배준영 – 복음을 들고 너에게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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