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시기를 지내는 한 가지 비결은, 병중에 있을 때처럼 그저 시간시간, 순간순간을 견뎌 내는 것입니다. 현재가, 즉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울 때는 드무니까요. 하나님은 실제 일어난 일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시지, 앞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무수한 일들에 우리에게 미리 힘을 주시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는 사실 그분의 기도라는 말, 얼마나 옳은 말인가요. 우리가 기도할 때 실은 우리를 통해 그분이 자신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불안과 염려는 우리가 하나님께 진정시켜 주실 것을 간청해야 하는 고통일 뿐 아니라 그분께 용서를 구해야 할 약함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명하셨기 때문이지요.
C.S 루이스 – 메리에게 루이스가
이민 교회의 주변성을 넘지 못하는 교회, 즉 양자택일 혹은 양자 수용의 수준에 머무는 교회 대부분은 세대 간의 갈등의 골이 깊다. 1세 중심의 교회에서는 1세는 2세를 파트너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방향대로 따라오라고 강요하며, 2세는 그런 1세의 힘과 권위주의 앞에서 순응하거나 아니면 교회를 떠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많은 2세들이 조용히 교회를 떠나고, 남은 2세들은 1세 문화에 순응하게 되어 두 문화의 변증법적 승화는 불가능하게 된다. 그렇기에 이민 교회에서 세대 간의 존중과 연대, 협력과 통합은 이민 교회의 주변성을 극복하고 창조적인 공동체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2세들을 키우고 세우는 것은 단순히 다음 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1세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며, 더 나아가 이민 교회 공동체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박종수 – 디아스포라 주변인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십자가에서 시작됩니다. 죽기 전에 죽었고 이제는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보이는 대로 살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주를 따르며 삽니다. 이런 믿음의 삶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모세의 출애굽에서 봅니다. 고통과 괴로움과 불안함은 구원의 메신저입니다. 이집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알아차리고 메신저를 보내신 주 하나님, 즉 자신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그들 조상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의 세상 종살이를 보시며 그들을 몸소 아십니다. 하나님은 떨기나무의 불꽃 가운데 자기의 종 모세를 부르시고 그와 함께 이집트로 갑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애굽기 3:14). 그러므로 우리는 출애굽을 위해 모세를 보내신 분이 바로 아들과 하나이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메시아 하나님이 부르짖는 자기 백성에게 모세를 보내시며 주님도 그와 함께 가십니다.
황웅렬 – 하나님 임재와 성경일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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