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훈련이 세상 훈련과 근본적으로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즉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연마하는 것이 아닙니다. 헨리 나우웬이 말한 것처럼 어떤 것을 터득하는(master)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성령의 지배를 받는(be mastered)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 은사는 탁월한데 사역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삶을 성령의 통제에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배야말로 철저한 성령의 사역입니다. 진정한 예배의 마에스트로 즉 최고의 지휘자는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는 훈련의 키는 내 육적인 태도,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영적인 습관, 마음의 습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 노릇하던 삶의 습관을 성령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창조주 하나님을 기념하는 날이라면, 주일은 구속주 예수님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빠진 창조질서만 제대로 지켜도 놀라운 결과가 일어나는데, 하물며 십자가와 부활로 창조의 의도를 완성하신 예수님을 기리는 주일을 제대로 지킬 때 어떤 은혜와 축복이 임할 지 상상해보십시오.
이유정 – 성령의 지배를 받는 40일 예배훈련
우리가 사는 현재 세계의 문맥에서 본문을 해석하는 작업에는 몇 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하나는 우리의 선입견이 개입된 견해와 그러한 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해 본문을 조작하는 위험이다. 성경이 우리가 가진 정치적 견해에 대해 도전하여 변화에 이르도록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바는 결국 오늘날 성경의 상황화 작업이 전체 모든 교회의 임무이며, 그 작업은 기독교인 사이의 대화, 즉 다양한 문화, 조건 및 기독교 전통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놓칠 수 있는 성경의 측면을 일깨워줄 수 있는 기독교인 간의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져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구약 율법의 적실성과 관련하여 다소 복잡한 그림을 가진다. 이 적실성이란 고대 이스라엘에서 미래의 하나님 왕국으로 이어지는 구원사 속에서, 성경의 위치와 우리의 위치를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의 삶을 위하여 또한 기독교인의 정치적 활동을 위하여 구약의 율법은 고도로 교훈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지시가 될 수는 없다. 그 적실성은 각각의 경우를 따라 신중한 평가를 요구한다.
리처드 보쿰 – 성경과 정치
다윗은 일생의 체험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 주기 위하여 하나님을 목자로, 인간을 양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목자’이신 하나님을 잘 알고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며 의탁하기 위해서는 먼저 ‘양’인 우리 인간의 모습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을 “길을 잃고 헤매는 양”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양인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욕구는 아브라함 매슬로우가 주장한 다섯 가지 욕구가 아닙니다.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구하고, 찾고, 따르고, 그분과 함께하며 교제하려는 욕구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우리의 모든 욕구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과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와 친밀한 교제를 나눌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돌봐 주시기 때문입니다.
김영민 – 시편 23편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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