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커플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놓고 1심과 2심 법원이 서로 엇갈린 판단을 한 가운데 지난 23일 전원합의체 심리를 진행한 대법원의 최종 판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동성커플에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줄 수 있나 하는 문제에 대해 지난 2022년 1심 법원은 ‘사실혼’이 아니어서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023년, 서울고등법원은 동성 커플 관계가 ‘사실혼’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사실혼’과 같다며 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했다.

1심과 2심 법원이 이처럼 상반된 판단을 한 건 ‘사실혼’에 대한 개념을 서로 다르게 봤기 때문이다. 1심 법원은 법적으로 동성혼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혼’ 관계가 아닌 것으로 봤고, 2심은 동성 커플이 ‘사실혼’은 아니지만 ‘사실혼’과 다르지 않다며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것이다.

‘사실혼’이란 결혼을 하고 나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부부의 관계를 일컫는 말이다. 혼인의사 없이 단순히 공동생활을 하는 동거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동거의 경우 부부공동생활의 실체가 없어 법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하지만 ‘사실혼’은 법률혼에서 인정되는 권리와 의무의 일부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동성 커플은 혼인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의사에 따라 한 공간에서 생활한다고 해도 ‘사실혼’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여기서 법적 ‘사실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혼인 여부다. 즉 혼인을 하고 혼인신고를 안 했다면 ‘사실혼’으로 인정하지만 혼인할 수 없는 관계를 ‘사실혼’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혼인이란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는 의례 또는 계약을 의미한다. 사회가 인정하는 절차에 따라 이성이 결합해 부부가 되는 걸 통칭한다. 그런데 동성 커플은 남녀의 결합이 아닐뿐더러 사회가 인정하는 절차에 따라 부부가 되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부부로 인식해도 법률혼은 물론 ‘사실혼’으로도 인정될 수 없다.

그런데 2심 법원은 동성커플을 ‘사실혼’으로 본다며 건보 자격을 부여했다. 오직 법에 근거해 판단해야 할 법원이 법정주의가 아닌 정서와 온정주의에 기울어진 판단을 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우리나라 현행법에서는 동성애 관계를 ‘사실혼’과 동일하게 취급한다는 규정이 없기에 2심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 대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가 관건이다.

교계에선 동성커플에게 건보 피부양자 자격을 부여한 2심 법원의 판단을 놓고 “동성결합 합법화를 위한 우회로 확보”라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 주최 세미나에서 홍익대 법대 음선필 교수는 “동성커플을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정한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된다면 동성결합 합법화의 문이 활짝 열리는 셈”이라며 “사실혼 배우자를 보호하는 다른 영역에서도 동성커플의 보호를 주장하는 전거로 활용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음 교수가 2심 판결을 동성혼 합법화의 과정으로 의심하는 이유는 동성커플의 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자격 관련 소송의 궁극적인 목적이 건보료 부담을 덜겠다는 게 아닌 “동성결합의 합법화로 이어지는 우회로 확보를 위해 철저히 기획된 소송”으로 봤기 때문이다. 겉으론 건보료 부담 등 경제적인 이유를 내세웠지만 사법부로부터 동성 결합에 대해 유리한 판결을 얻어내는 등 유사 사례들을 모아 입법 명분을 삼으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지나친 억측이라고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나라들마다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사법부 판결, △의회 입법, △국민 투표 등의 절차를 거쳐 동성혼이라는 최종 목표에 도달했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중 사법부의 판결은 소수의 법관이 사회 공론화 과정을 생략하고 자의적으로 허용 여부를 판단한다는 점에서 친 동성애 진영이 손쉽게 ‘소송’을 선택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앞둔 시점에서 입법부까지 나섰다. 국회의원 10인이 대법원에 “남성 동성애자 커플의 파트너에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말 것”을 요청한 것이다. 이 들은 지난 23일 대법원에 낸 의견서에서 “대한민국은 헌법을 통해 남녀 양성평등에 기초한 혼인제도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36조 1항)를 규정하고 있다”며 “‘사실혼’과는 전혀 달리, 동성 간 혼인이나 동거에 대한 법적 보호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우리의 법제에서 동성간 결합 등에 대해 혼인에 준하는 보호를 하려는 시도는 헌법과 법률에 반하는 위험스러운 시도”라고 했다.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원들이 법을 집행하는 사법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만한 의견을 전달하는 건 매우 드믄 사례에 속한다. 삼권 분립체제 하에서 웬만한 사안이 아니면 입법부가 사법부의 판단에 어떤 식으로든 의견을 표시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만큼 이번 사안을 중대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회·경제·문화적 이유로 생겨나는 다양한 공동생활체에 대해선 적절한 법적 보호조치와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회적 합의와 사회의 도덕과 규범이 허용하는 전제 하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안’과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등이 발의되었으나 통과되지 못한 것도 같은 이치다. 대법원 전원 합의체는 국회에서 제정되지 않은 법을 2심 재판부가 무슨 근거로 법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는지 적법성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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