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한국전쟁을 전후해 종교인 1천700여 명이 학살된 사실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지난 17일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과 좌익 세력 등에 의해 1천700명이 희생된 사실을 발표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전북지역의 기독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진실화해위는 종교별 교단과 교회 등을 통해 1,700명의 종교인 희생자 명단을 파악하고, ‘6‧25사변 피살자 명부’ 등의 공적 자료와 교회와 교단 등의 역사 기록을 추가로 수집해 희생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특히 이번 조사에선 1950년 7∼11월 전북 군산·김제·정읍 등 8개 지역의 24개 교회에서 104명이 살해된 사실이 새롭게 파악됐다.
북한군과 좌익 세력이 저지른 전북지역 기독교인 집단 학살은 1950년 전쟁 발발 직후인 7월부터 11월까지 4개월에 걸쳐 발생했다. 이는 낙동강 유역까지 밀고 내려왔던 공산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승기를 빼앗기고 퇴각을 결정하던 때로 이 시기에 전체 진실규명대상자 104명 중 57.7%인 60명이 한꺼번에 희생됐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나온다. 당시 북한군이 도망치듯 북한으로 퇴각하면서 마치 사냥하듯 총과 죽창으로 양민을 마구 학살했다는 증언이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희생자 중 남성이 76.9%(80명)였고, 연령은 10대부터 70대까지 중에 40대가 26%(27명)였다. 교회 직급은 교인이 54명(51.9%)으로 과반수를 넘었고, 집사 23명, 장로 15명, 목사와 전도사 각 6명이었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기독교인을 잔혹한 학살의 주 대상으로 삼았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진실화해위는 희생자 중에 김성원‧김종한‧김주현‧안덕윤‧이재규‧임종헌 등 다수의 목사와 전도사가 포함된 사실도 확인했다. 또 대한민국 1호 변호사인 홍재기 변호사와 제헌 국회의원 백형남‧윤석구 의원 등 주요 인사의 이름도 나온다. 그런데 이들은 당시 북한군과 좌익 세력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양민 중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진실화해위가 밝힌 전북지역 희생자 104명 중 가장 많은 희생자가 확인된 지역은 군산이다. 이곳에서만 28명(26.9%)이 사살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제에서 23명, 정읍에선 17의 희생자가 나왔다. 군산지역 희생자 28명은 신관교회, 원당교회, 해성교회 목회자 또는 교인으로 이들은 옥구군 미면 토굴 3곳에서 인민군이 퇴각하던 시기에 집단 학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김제지역 희생자 23명은 주로 만경교회 교인으로 이들 중 9명은 만경분주소 우물과 전주형무소에서 희생됐으며, 광활·대창·대송교회 교인도 다수 포함됐다. 정읍지역은 두암·정읍제일·매계교회에서 희생자 17명이 확인됐다. 특히 두암교회에서 나온 희생자는 우익인사의 가족과 같은 교회에 다니는 교인이라는 이유로 빨치산에 의해 집단 학살당한 것으로 밝혀져 공산주의자들의 잔혹한 속성에 새삼 치가 떨린다.
이외에도 완주지역은 교회 5곳에서 9명의 희생자, 고창지역은 덕암교회와 고창읍 교회 2곳에서 12명의 희생자, 익산지역은 황등·신황등·대장·동련·무형교회에서 12명의 희생자, 그밖에 전주중앙교회에서 2명, 임실 관촌장로교회에서 한 명의 기독교인 희생자가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북한군과 좌익세력이 저지른 만행의 실체도 공개했다. 이들이 교회와 교인 집에 불을 질러 살해하고 불길을 피해 집 밖으로 빠져나오는 사람은 죽창으로 찔러 아이부터 노인까지 20여 명이 현장에서 즉사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군의 잔학 행위 과정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이들의 증언으로 어렴풋이 알려졌던 실체적 진실이 국가기관에 의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는 점에서 당시의 끔찍했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듯하다.
북한 공산세력이 기독교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 건 해방 직후부터다. 기독교가 민주주의와 인권 등을 유독 강조하며 공산주의와 대척점에 섰기 때문이다. 해방 후 소련의 지원으로 북한을 공산주의자의 터전으로 삼은 김일성이 처벌 대상으로 첫손에 꼽은 게 기독교인이다. 진실화해위는 6.25 전쟁 당시 기독교인이 많이 희생된 원인에 대해 “기독교인의 우익활동, 월남 기독교인 등의 이유로 기독교를 공산주의 좌익에 비협조적인 세력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노무현 정부 때 출범한 진실화해위는 80% 이상 국군·미군·경찰을 가해자로 다룰 정도로 국군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는 들춰내면서도 북한군과 좌익의 잔혹 행위는 거의 거론하지 않았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 때 진실화해위는 6·25 학살 피해자 유족에게 ‘가해자 특정이 어려우면 국군·경찰로 써넣으라’고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누구를 위한 진실 화해냐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번 진실규명을 시작으로 한국전쟁 시기에 공산군과 좌익 세력에 의해 발생한 종교인 희생 사건을 조사해 종교별·지역별로 나눠 순차적으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추가 조사과정에서 희생자 수뿐 아니라 그동안 묻히고 감춰졌던 진실이 더 많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과거사에 대한 진실규명은 국가가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 유족의 고통을 더는 차원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진실화해위의 발표는 벌써 해야 했을 일을 이제 비로소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뒤집힌 역사적 진실이 앞으로의 조사과정에서 반드시 바로 잡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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