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칼 브라텐은 오늘의 교회는 예수 이외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의 문제와 관련하여 근본적인 신앙고백에 심각하게 봉착하여 있다고 지적하면서, 교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여기서 대두되는 문제가 “배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이다. 극단적인 배타주의와 포괄주의와 다원주의는 성경적 복음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과연 통합 총회의 에큐메니컬위원회는 어떤 입장을 견지할까?
본 소고는 지난 제106회 통합 총회에서 에큐메니컬위원회가 소개한 유인물의 문제점들을 평가하고, 한국에서 개최된 WCC 부산 총회를 점검하고, 1990년 바아르 선언문과 2002년 WCC 중앙위원회의 “종교 다원주의와 기독교인의 자기 이해”를 검토하여 통합교단이 한국교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기에 WCC를 대체할 새로운 세계교회협력기구를 향하여 나아갈 시점이 되었다고 판단하여 바람직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공론화하고자 한다.
I. 통합교단 에큐메니컬위원회 보고서와 바아르 선언문
1. WCC의 JPIC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에 대하여
WCC가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것을 가짜뉴스라고까지 항변하지만, 에큐메니컬위원회의 보고서는 단답형으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WCC 안에서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매우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동방정교회와 아프리카 교회들은 동성애에 대한 일체의 논의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만약 WCC가 동성애를 의제로 상정할 경우, 즉각적인 탈퇴를 경고하고 있기도 합니다. WCC는 동성애와 관련하여 그 어떤 입장이나 성명도 발표한 적이 없으며 관련된 일체의 활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WCC가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것은 가짜뉴스입니다.”
이런 허공을 울리는 선언과는 달리, 1990년 3월 5일부터 12일까지 8일간 서울올림픽공원의 역도 경기장에서 열렸던 「정의·평화·창조의 보전」(JPIC) 제1차 세계대회가 「정의·평화·창조 질서의 보전을 위한 언약」이라는 선언문을 채택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문제는 선언문이 우리말로 포장이 되었지만, 원제가 ‘홍수와 무지개 사이에서’가 말해주는 것처럼 그때부터 WCC는 노아의 홍수가 세상에 관영한 동성애의 죄악에 대한 창조주 하나님의 심판보다는 동성애자를 옹호하는 무지개 언약에 초점을 두고서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일을 이면에 배치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로부터 두 달 후에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또는 아이다홋데이는 매년 5월 17일에 열리는 행사가 되었는데, 그날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날이다. 바로 「정의·평화·창조의 보전」(JPIC) 제1차 세계대회가 서울에서 열린 그해 1990년 5월 17일로 지정된 날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WCC의 치밀한 노림수인가?
2018년부터 장신대에서 동성애를 옹호하는 학생들이 5월 17일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채플에서 7가지 색깔의 노아 무지개가 아니라 6가지 색깔의 무지개 깃발과 복장 그리고 줌 화면 배경으로 예배와 수업을 방해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장신대에서 동성애를 옹호하는 학생들은 여기서 그치지를 않고 바울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라는 고백을 ‘나는 무지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바꾸어 무지개 시위를 하면서 퀴어 신학을 주저함이 없이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용서와 화해와 연합과 일치라는 화두는 1986년에 화란개혁교회인 남아프리카 교회가 교회 일치와 화해를 위한 기준 문서들 가운데 하나인 벨하르 신앙고백서(Belhar Confession)를 채택하면서 WCC에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일치와 화해라는 주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특수한 인종차별 정책을 타파하는데 결정적인 이바지를 하였다. 그 이면에는 넬슨 만델라가 국가반역죄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옥중에서 계속해서 용서와 화해를 위한 메시지를 발표하다가 27년째인 1990년 2월 11일에 출소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최초로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에도 용서와 화해를 강조하는 과거사 청산을 시행한 일에 기초한 것이다.
문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1980-90년대와는 사뭇 다른 여러 가지로 현재 상황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화두가 인종차별이 아니라, 빈부격차와 에이즈 및 동성애와 코로나 사태와 백신 확보 차질 등으로 인한 선진국과의 거리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WCC의 대응은 변화된 환경에 대처하는 것이 무척 소극적이고, 대면 회의로 모이기보다는 영상이나 줌으로 비대면 회의를 진행하는 형편인데도 종교 다원주의 및 타종교와 대화를 공식적으로 진행해옴으로써, 전체 회원 교회의 공감대나 교회적 합의 없이 위원회를 중심으로 연구된 내용을 도태로 전체 회의의 방향을 잡는 것은 현실감이 떨어지고, 교회가 가장 역점을 두고 살펴야 할 소외된 자를 사랑하고 가난한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하는 사역과 같은 산재한 현안과도 거리가 멀어서 정확한 문제를 진단하거나 지역교회가 당면한 문제에 소홀하고 있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문제점은 106회 통합교단의 에큐메니컬위원회의 의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필자는 성경학자로서 WCC의 종교 다원주의가 성경적 복음의 계시를 담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특수성을 훼손하고, 복음적 진리를 상대화하여 타종교와 대화를 지상 최대의 이념으로 삼고 있는 종교 다원주의의 주장에 속고 있는 혹은 속이고 있는 거짓 지도자들을 정체를 알리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제 저들이 하나님의 포도원을 허무는 여우들이기 때문에, 성도들의 눈물 어린 헌금을 교회적 공감대나 신앙적 합의 과정 없이 WCC나 NCCK나 노회나 총회 임원 등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지교회에 후원을 강요하는 지원이 더는 계속되어서는 안 되기에, 이에 필자는 106회 총회에 소개된 통합교단 에큐메니컬 위원회의 유인물에 언급된 내용에 대한 평가로 이어간다. (계속)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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