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열린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실행위원회에서 9월 총회에서 격론이 일었던 ‘제7문서’의 수정안이 통과됐다. 그런데 총회 임원회가 내놓은 수정안에 그간 논란이 된 ‘성적 지향’, ‘성 평등’ 용어가 삭제됐음에도 교단 내 동성애 반대진영이 환영이 아닌 우려의 뜻을 표한 사실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기장 소속 목사 176명과 장로 231명으로 구성된 동성애·동성혼반대대책위원회(대책위)는 실행위 직후에 발표한 성명에서 ‘수정안’의 문제점을 짚었다. 이들은 ‘성적 지향’ ‘성 평등’ 용어가 삭제된 건 당연하다면서 그 대신 ‘성적인 쟁점이 공동의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문구가 첨가된 부분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런 표현이 장차 교단 내에 갈등의 불씨가 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제7 문서’와 관련한 논란은 9월 기장 제108회 총회에서 정치부가 ‘성적 지향’, ‘성 평등’ 용어가 들어간 문서를 내놓는 데서 발단이 됐다. 해당 문서 채택 여부를 놓고 격론이 거듭되자 총회는 임원회로 하여금 본안을 수정토록 한 후 실행위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교통정리 했다.
그런데 지난 9일 실행위에 상정돼 격론 끝에 통과된 ‘수정안’이 다시 논란을 야기하는 모양새다. 임원회가 내놓은 안에 ‘성적 지향’과 ‘성 평등’ 용어가 삭제된 대신 ‘제108회 총회에서 성적지향·성평등이라는 단어가 논쟁이 되어 성적인 쟁점으로 바꾸었다’는 각주가 첨가됐기 때문이다.
총회의 위임을 받는 임원회로선 이 문제와 관련해 교단 내에서 첨예한 찬반 논란이 있었다는 걸 있는 그대로 적시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동성애 반대진영에선 이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교단 총회에서 문제가 돼 임원회가 ‘수정안’을 다시 내놓기로 한 이상 논란이 된 ‘성적 지향’과 ‘성 평등’ 용어만 삭제하면 된다는 게 동성애 반대진영의 주장이다. 그런데 굳이 ‘성적인 쟁점’이란 표현을 삽입함으로써 문제를 봉합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갈등을 야기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임원회가 이렇게 할 만한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란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임원회가 ‘수정안’에 삽입한 ‘성적인 쟁점’이란 표현은 이를테면 ‘자신의 성적인 견해가 옳다고 서로 다투는 중심 사항’이라는 말”이라는 뜻이다. ‘성적 지향’과 ‘성 평등’이란 용어를 넣어선 안 된다는 쪽이나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걸 가지고 양측의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논란 자체를 객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논란 자체를 공식문서에 기록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제7문서’의 내용에 동성애를 지향하는 표현이 들어간 것이 총회에서 제동이 걸렸다면 이걸 빼면 간단히 문제가 해결될 것을 굳이 양시론(兩是論)적인 입장의 표현을 첨가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이 동성애를 지지하는 진영의 입지를 터주는 결과가 된다면 두고두고 불씨가 될 수도 있다.
대책위는 실행위에서 임원회가 내놓은 ‘수정안’ 그대로 통과되자 동성애를 지지그룹에서 절반의 실패이자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동성애 지지그룹에선 ‘제108회 총회에서 성적지향·성평등이라는 단어가 논쟁이 되어 성적인 쟁점으로 바꾸었다’는 각주가 첨가된 것에 대해 “역사화·현재화”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평가했다.
기장 총회가 만든 ‘제7문서’는 ‘교단 새역사 7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탄생한 일종의 ‘선언문’ 성격이다. 지난 20년간 교단 내부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교단의 정체성을 집대성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중요한 문서에 ‘성적지향’, ‘성 평등’ 등의 용어가 들어간 건 그동안 기장이 걸어온 노선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이런 용어가 총회에서 논란이 돼 수정 과정을 거쳤다는 건 기장 내부에서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는 징조로 해석될 수 있다.
기장이 교단 내부에서 이런 갈등이 표출되는 건 한국교회 주요 교단이 ‘차별금지법’ 반대를 천명한 것과는 결이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기장 총회는 한국교회 교단 중 가장 진보적인 교단으로 분류되면서도 그간 동성애과 관련된 이슈들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그런 분위기에서 교단 내 교회와사회위원회가 지난 7월1일 ‘포괄적 차별금지법 지지의 글’을 총회 홈페이지에 게재하자 교단 교회와 성도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정정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장 헌법 신앙고백서(제3장 인간과 죄: 2. 남녀)에 의하면, 기장 헌법 신앙고백서(제3장 인간과 죄: 2. 남녀) “사람은 구체적으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 그리고 일남일녀를 결합시켜 공동체를 이루어 생을 즐겁고 풍부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의 축복이다(창 1:27-31, 2:24-25). 인간이 이성의 상대자와 사랑의 사귐을 위하여 가지는 성(性)은 생의 의미와 창조의 기적을 발휘하는 귀중한 특성이다. 그러므로 성을 오용하거나 남용하여 불행을 초래하지 말고 그리스도 신앙으로 그 질서를 지켜야 한다.”라고 돼 있다. 어디를 봐도 ‘성적 지향’과 ‘성 평등’이 끼어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사실 교단의 ‘제7문서’에 담긴 “성적인 쟁점”이란 표현은 교단의 복잡 미묘한 심경을 대변해 주는 측면이 없지 않다. 다만 이것이 ‘차별금지법’에 대한 교단의 다양한 접근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더라도 만약 동성애를 인정하는 의미로 여겨진다면 앞으로 교단의 내부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교단 헌법과 교단의 정체성이 담긴 선언문의 상대적 괴리는 교단의 미래 뿐 아니라 한국교회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