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다낭에서 의료선교활동 중 세상을 떠난 박상은 안양샘병원 미션원장의 장례가 8일부터 11일까지 안양샘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후 경기도 양평 하이패밀리에서 수목장으로 안장될 예정이다. 고 박 원장은 지난 5일 베트남 현지에서 의료선교활동을 하던 중 쓰러져 심폐소생술(CPR)을 받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신장내과 전문의로 안양샘병원 제3대, 제5대 원장을 지낸 고 박 원장은 고려대학교를 나와 고신대학원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의사가 된 이후 박 원장은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장기려 박사의 삶을 통해 참다운 인술을 배우기 위해 부산 복음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고인은 훗날 이때 스승인 장기려 박사의 의술뿐 아니라 크리스천으로서의 인격도 갖추게 됐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그 후 고인은 고신대 의대 내과 교수를 거쳐 미국 미주리주립대와 세인트루이스의대 교환 교수를 지냈다. 미국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는 동안 생명윤리를 공부하면서 향후 전인 치유와 생명 사랑, 의료선교에 매진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2000년에 안양샘병원 원장에 부임한 고인은 이곳을 자신의 의료선교 비전이 집약된 사역 현장으로 변화시켜 나갔다. 안양샘병원 설립자인 이상택 박사와 함께 이 병원을 선교를 지향하는 병원으로 탈바꿈시킨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기도의 열매이기도 한 병원의 전인 치유는 지난 2007년 7월 샘물교회 단기선교팀의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과 2014년 이집트 성지순례객 버스 테러사건, 세월로 참사 유가족 등을 돌보는 데까지 이어졌다.
임종 전까지 안양샘병원 미션원장으로 재직한 고인은 한국교회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의료선교 지도자로 꼽힌다. 그는 생전에 ‘샘글로벌봉사단’을 조직해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는 진료봉사와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주말 무료 진료를 시행하는 등 의료선교에 매진했다. 아프리카미래재단을 설립해 지구촌 취약지역을 다니며 의료봉사에 앞장서기도 했다.
의사로서의 고인의 삶을 말할 때 ‘생명 사랑 존중’을 빼놓을 수가 없다. ‘행동하는 프로라이프’ 공동대표를 역임하는 등 낙태 반대 운동에 앞장서며 기독교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끼친 점은 훗날 한국교회가 그의 업적을 반드시 평가해야 할 부분이다.
고인은 지난해 3월 한국교회연합 생명윤리위원회와 성누가의료재단이 공동 주최한 ‘한국 생명윤리의 과제와 나아갈 길’ 주제의 생명윤리 세미나에서 “‘인간의 생명은 인간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다. 모든 영역에서 이 생명의 존엄성 지켜야 한다’는 게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발표했던 생명존중선언문의 내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21세기 두 종류의 폭력이 있다. 하나는 과거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나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거시적 폭력이고, 다른 하나는 동전보다도 작은 인간(태아)에게 가해지는 것과 같은 미시적 폭력”이라며 ‘낙태’ 문제를 폭력의 관점에서 언급했다.
고인이 낙태를 ‘미시적 폭력’이라고 한 건 전쟁, 테러 등과 같은 폭력에는 국가와 사회, 국민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대응하지만 정작 아무 힘없고 잘못이 없는 생명을 해하는 낙태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세태를 일컫는다. 잉태된 생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가장 안전해야 할 엄마의 뱃속이 더는 그 생명을 안전하게 지킬 수 없는 곳이 돼버린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빗댄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제4기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고인은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에 대한 위헌 심판이 내려진 후 입법 공백 상태에서 음성적인 낙태가 만연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국회와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헌재가 입법부인 국회로 하여금 이 조항을 지난 2020년 연말까지 개정해야 한다고 했음에도 끝내 기한을 넘겨 해당 조항의 효력이 상실된 점을 개탄하며 “이것이 한국 생명윤리의 현실인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고인의 이런 지적은 생전에 자신이 강조해 온 생명윤리의 기본 원칙과도 직결된다. 그건 “우리가 아무리 많은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린다 할지라도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죽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낙태는 인간이 결코 해서는 안 될 가장 나쁘고 악한 범죄라는 게 그의 의사로서의 평생의 소신이자 지론이었다.
그는 과거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태아는 어쩌면 이 땅에서 가장 작고 연약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 태아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라면,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낙태는 결국 예수님의 살을 찢은 행위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신실한 크리스천 의료인으로서 한평생을 전인 치유, 생명 사랑, 의료선교, 낙태 반대운동에 헌신해 온 고 박 원장이 급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난 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한국 의료계나 한국교회에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그가 이루고자 했던 생명 사랑 정신과 의로운 행동들까지 중단된다면 이건 손실이 아니라 죄악이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고 박상은 원장을 오랫동안 기억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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