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동성 군인 간의 성적 행위를 강제성 여부에 상관없이 처벌하는 군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합헌’ 결정했다. 동성 군인 간의 성적 행위를 방치할 경우, 군대의 명령체계나 위계질서가 위태로워지는 등 궁극적으로 군의 전투력 보존에 직접적인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한 규정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행 군형법 92조의 6은 군인·군무원 등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면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번 헌재의 판단은 동성 간에 성행위를 해 이 조항을 어긴 혐의로 기소된 군인들의 사건을 심리하던 수원지법과 인천지법이 ‘그 밖의 추행’ 부분에 관해 위헌 제청을 낸 데 따른 것이다.
제청법원의 의견은 이 조항이 강제력 행사 여부, 행위의 주체·객체·시간·장소 등에 관해 아무런 기준이 없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고 봤다. 또 군인 간 합의된 성적 행위가 군의 전투력에 직접적 위해를 발생시킬 위험이 없는데도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동성애자의 성적 행위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한 건 ‘평등원칙’ 위배라는 것이다.
그러나 헌재의 판단은 달랐다. 군 조직의 특수성과 전투력 보호라는 공익 등을 종합해보면 이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5명의 재판관이 “군내 성적 행위는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며 동성 군인 사이 추행에 대해 처벌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헌재의 이번 위헌법률심판 제청 사건에서 주목되는 점은 동성 군인간의 성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군형법’이 ‘과도한 제한’이 아니라고 한 점이다. 수원지법과 인천지법이 ‘그 밖의 추행’이란 표현의 모호함이 죄형법정주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본 것에 대한 확실한 답인 셈이다. 일각에서 이 조항이 과도한 인권 제한이란 주장이 있었던 걸 감안할 때 이번 헌재의 결정은 그동안의 논란을 불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군대는 상명하복의 수직적 위계질서 체계가 확실한 조직체다. 그런 환경에서는 상급자가 우월적 지위와 권력 등을 이용해 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성적 행위가 이뤄지기 쉬운 구조다. 헌재가 군형법 조항을 ‘합헌’으로 판단한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이걸 방치할 경우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평등 원칙’ 위반 논란에 대해서도 확실한 대답을 내놨다. 군대는 일반 사회에 비해 동성 군인 간 성적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점을 고려할 때, 이성 군인과 달리 동성 군인 간 합의에 의한 성적 행위를 처벌하는 데 합리적 이유가 있다는 것이 헌재가 ‘평등 원칙’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한 근거다.
이처럼 동성 군인간의 성행위를 엄격히 금지한 ‘군형법’ 관련 조항에 대해 헌재가 ‘합헌’을 결정하고 그 규정의 법적 합리성을 분명히 밝힌 건 큰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형사 처벌을 받게 될 사람의 불이익이 군기와 전투력 보호, 나아가 국가안보라는 공익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기 때문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이 있기 전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4월 ‘사적 공간에서 상호 합의에 따라 이뤄져 군기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면 동성 군인 간 성행위를 군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해 논란을 낳았다. 아무리 사적 공간이고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 하더라도 군인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군기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헌재가 군형법 92조의 6에 대해 ‘위헌’이냐, ‘합헌’이냐를 놓고 심판을 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2년, 2011년, 2016년에도 위헌 법률 심판을 해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다만 2016년 결정 때는 재판관 4명이 위헌 의견을 냈으나 정족수 6명에 이르지 못해 ‘합헌’으로 결론났다. 이번 ‘합헌’ 결정도 재판관이 5대 4로 의견이 갈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판관 4명이 동성 군인 간의 성행위를 처벌하는 군형법 관련 조항에 대해 ‘과도한 제한’이라며 ‘위헌’ 의견을 냈다는 점이다.
최근 법원은 동성애에 대해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차원에서 법 해석을 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자기 결정권 안에 포함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군은 일반 사회와는 엄격히 다르다. 국토 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지는 군인의 동성 간 성행위는 군 전투력 보존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위험성이 다분하다.
이번에 헌재가 위력에 의한 경우 또는 자발적 의사 합치가 없는 동성 군인 사이 추행에 대한 처벌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합의에 의한 성적 행위라 하더라도 근무 장소나 임무 수행 여부에 따라 처벌하는 게 합당하다고 판단한 건 그런 이유에서다. 이번 헌재 결정으로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군형법’에 대한 시시비비가 사라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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