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에 발이 묶였던 우리 국민 163명이 정부가 급파한 공군 수송기를 타고 무사히 귀환했다. 그런데 이번 수송 작전엔 본인 51명과 싱가포르인 6명도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이스라엘을 떠나길 희망하는 우리 국민 모두를 수용하고도 여유 좌석이 생겨 인도적 차원에서 탑승을 제안한 것이란 설명이다.

공군 수송기 ‘시그너스’가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건 지난 14일 밤이다. 이스라엘 현지를 출발한 지 17시간 만이다. 공군 수송기가 무사히 착륙하자 초조한 얼굴로 입국장 앞에 모여있던 가족들은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안도의 박수를 보냈다. 이 군 수송기를 타고 귀국한 한 교민 가족은 “이스라엘 현지의 정세가 심각해지면서 귀국 항공편이 모두 취소돼 오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됐는데 정부에서 이렇게 빨리 대응을 해주실 줄 몰랐다”며 “안전하게 입국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우리 군 수송기가 전쟁 지역에 있는 국민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해 현장에 급파된 게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 언론들이 한국군의 구출 작전에 뜨거운 찬사를 보내고 있는 건 자국민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국민을 군 수송기에 함께 태운 극히 이례적인 일 때문이다.

한국군 수송기에 일본인 가족 51명이 탑승한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과 미즈시마 고이치 주이스라엘 일본 대사는 일본 국민의 긴급 귀국을 지원해 준 데 대해 우리 정부에 깊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 CNN과 BBC 등 세계 주요 매체들도 한국의 인도주의 정신에 찬사를 쏟아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우리 정부가 일본인을 구출하는 데 아무 대가도 없이 선뜻 손을 내밀어 준 데 대해 감사하면서도 정작 자국 정부는 일본인 대피를 위해 현지에 보낸 전세기 탑승 비용으로 30만엔(약 27만원)을 받은 것에 못마땅해하는 분위기다.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이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한국 군용기는 무료로 탑승할 수 있었지만, 일본 정부 전세기를 타는 데는 3만엔을 내야 하는데 대응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적절했다”고 대답한 게 불난 집에 부채질한 격이 됐다.

사실 우리 정부가 이스라엘에 급파한 군용기와 일본이 보낸 전세기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군용기는 국방비로 운용되는 군 자산이지만 전세기는 민간 항공기이기 때문에 같은 개념으로 비교하는 게 적절치 않다. 전세기의 경우도 정부의 판단에 따라 국민에게 비용을 전가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국이 결정할 일이다.

그런데 일본 국민의 불편한 심기가 단지 전쟁 위기 지역의 국민을 대피시키며 그 비용을 청구한 게 전부인 것 같진 않다. 우선 우리 정부가 이스라엘에 군 수송기를 급파한 시점에 비해 일본 정부가 전세기를 현저히 늦은 것부터가 불만이다. 더구나 한국은 자국민뿐 아니라 빈자리에 일본과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 국민까지 태워 서울까지 안전하게 이송한 반면에 일본은 고작 8명만 태우고 인근 두바이에 내려 주고 떠났다는 사실에 더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다.

우리 정부가 현지에 보낸 군 수송기 ‘시그너스’는 본래 공중 급유기다. 이번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모든 항공편이 최소되자 우리 국민을 태우기 위해 민간 항공기처럼 좌석을 만들어 현지로 급파됐다. 정부 관계자는 “가용 230여 좌석에 귀국을 희망하는 우리 국민이 모두 탑승하고 자리가 남으면 인도적 차원에서 제3국 인접국 국민에 대한 영사 지원도 제공하기로 했었다”고 밝혔다. 출발 전에 이미 이런 인도적 결정을 내렸다는 뜻이다.

한국의 인도주의적 결정에 일본인들은 연일 SNS를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나는 혐한파지만, 이번 일에서는 한국에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고 싶다.”“4월 수단때도 한국군이 일본인 구출했었다” “한국 정부가 자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인인 일본인을 정부 전용기에 실어 주시고 도와주신 것에 대단히 감동했고 감사합니다” 등 칭찬 릴레이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반면에 일본 정부를 향해서는 “이런 위기상황에 1인당 3만엔 부담의 전세기밖에 낼 수 없다니 한심하다. 자위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영문을 모르는 데 세금을 쓰지 말고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세금을 썼으면 좋겠다”는 등 비판 글로 도배했다.

정부의 결정이 일본 정부를 곤욕스럽게 만든 건 전혀 뜻밖이다. 우리로선 지극히 당연한 일을 한 건데 상대적으로 돋보여 과도하게 주목을 받고 지나치게 찬사를 받는 것에 우쭐할 필요는 없다. 사실 우리에겐 잊을 수 없는 참극의 상처가 있다. 지난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 활동 중 23명이 탈레반에게 납치돼 인질이 돼 그중 2명이 사살당하는 처참한 사건이다. 이번처럼 정부가 군 수송기를 파견한 것도 그날의 아픈 교훈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이번 정부의 신속한 대피작전이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층 높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여기에다 다른 나라 국민의 생명까지 끝까지 책임진 건 칭찬받아 마땅하다. 아무리 인도주의 정신이라고 해도 위급한 상황에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제대로 보여준 정부와 작전에 투입돼 수고한 장병들에게 온 국민과 함께 힘찬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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