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2. 성도의 보존
![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https://images.christiandaily.co.kr/data/images/full/61101/image.jpg?w=600)
하나님은 자신의 사람으로 선택한 사람을 절대로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버리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지도 않습니다. 끝까지 붙드시고 구원하십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확정적인 말씀이 이 사실을 확실하게 보장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
주님은 “내게 주신 자는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리라”(요 6:39~40)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겟세마네동산의 기도를 통해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2)고 하나님께 고했습니다.
2) 사도 요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39~40)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
3) 사도 바울
사도 바울도 성도의 견인교리를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견인의 구절은 롬 8:35~39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이외에도 바울 사도의 구원에 대한 확신과 진술이 허다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 4:18)
4) 다른 사도들도 동일하게 진술합니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나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벧전 1:5)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언을 받으리라”(벧전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않으리라”(벧후 1:10)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히 10:14)
5) 구약의 선지자들도 구원의 확실성을 예견하였습니다.
“그는 목자같이 양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 40:11)... 여기서 ‘온순히 인도하신다’의 히브리어는 ‘나할’인데 이것은 ‘지킨다’는 뜻입니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사 54:7)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렘 31:3)
이렇게 성도의 견인 교리는 구원의 확신에 대한 교리입니다. 우리는 앞의 진술들에서 충분히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에 의해 보전되고 구원이 보장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뿐 아니라 유명한 개혁주의 신학은 한결 같이 이를 지지합니다.
1) 먼저 칼빈의 기독교강요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신 각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실 뿐 아니라 그 구원이 미결된 상태에 있거나 의심스로운 상황에 있지 않도록 확실하게 구원을 보장해 주신다(롬 9:7~8, 갈 3:16)... 하나님 아버지는 선액하신 자들을 부르셨고 그들 모두를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선으로 하나님과 연합되게 하셨다”(3권 21-7).
2)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1647)의 진술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사랑하는 자 안에서 받아들이고 그의 성령으로써 효력있게 부르고 성화시킨 자들은 은혜의 상태에서 전적으로 또는 최종적으로 타락할 수 없다. 도리어 그들은 끝날까지 그 상태에서 확실히 견디며 영원히 구원을 받을 것이다”(17장 1절)
3) 안토니 후크마의 진술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선민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절대로 잃어버릴 수 없다. 이것은 구원의 약속을 인간의 노력과 의지에 두지 않고 구원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그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선택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끝까지 책임을 지신다”(Saved by Grace, 234p.)
4) R.T 캔달이란 사람은 더욱 명확하게 하나의 구호로 만들어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once saved, always saved”(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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