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168석을 가진 민주당이 이 후보자의 재산 신고 누락, 자녀 증여세 탈루 의혹 등을 이유로 부결을 당론으로 정한 결과다. 1988년 이후 35년 만에 벌어진 대법원장 후보자 낙마로 인한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야당인 민주당은 이 후보자의 결격사유로 재산 신고 누락 등 개인의 신상 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그동안 대법원장 후보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어느 정도 부정적인 사유가 있더라도 사법부의 독립성을 감안해 인준에 협조해 준 전례로 비쳐볼 때 매우 이례적이다.
민주당이 이 후보자를 낙마시키기로 당론으로 정한 배경엔 정치적 의도가 없지 않아 보인다. 우선 이재명 대표가 각종 혐의로 줄줄이 재판을 앞둔 현실에서 최대한 재판을 지연시킬 의도가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이런 의도가 사실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이 누굴 추천해도 계속해서 부결시키려 할 것이 뻔하다.
문제는 대법원장 공백 사태 장기화가 곧바로 국민 권익의 침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후임 대법관 임명 제청을 할 수 없게 돼 모든 상고심 재판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국민의 몫이지만 국민의 원성이 정치적 발목잡기를 한 책임 당사자에게 돌아오게 돼 있다. 대통령실이 “국민 권리를 인질로 잡고 정치 투쟁을 한다”고 비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 후보자의 낙마를 둘러싸고 교계의 심정 또한 편치 않아 보인다. 이 후보자는 지난달 2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질의에 “우리 헌법정신이 ‘양성 간의 혼인’을 기본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동성 간 ‘유사한 관계’를 금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라고 답해 논란을 자초했다.
그의 이런 답변은 올 초 서울고법에서 동성 부부간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한 생각을 밝히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런데 ‘동성 부부’에 대해 ‘우리 헌법정신은 금지하지 않고 있다’는 그의 답변이 적절했는가를 떠나 ‘양성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부정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앞서 이 후보자는 “대법원장이 된다면 어떤 원칙에 따라 (대법관을) 제청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법원장이 된다면 ‘성평등’ 구현을 기본으로 다양성을 반영할 수 있는 (대법원) 인적 구성을 만들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관·대법관 구성에서도 어느 정도 전향적으로 ‘성평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최대한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이 후보자의 국회 발언에 진평연과 동반연 등 교계 시민단체들은 “‘양성평등’의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고 사회 기초가 되는 가족체제를 무너뜨리는 주장”이라며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동시에 이 후보자를 추천한 윤 대통령에게 대법원장 후보 추천을 철회하라고 했다.
이 후보자의 국회 청문회 ‘성평등’ 관련 발언이 그의 본심인지 아닌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 후보자가 야당의 인준 협조를 받기 위해 질문에 맞춤형 대답을 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답변이 법률가로서 그의 소신이었다면 이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진평연 등이 “후보자가 주장하는 ‘성평등’ 개념과 동성결혼이 미치는 혼란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대법원장 후보자로서 이런 주장을 함부로 할 수 없다”고 개탄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가 청문회 과정에서 이런 발언을 하게 된 배경이 된 사건은 올해 초 서울고등법원이 ‘동성결합 상대방에게 국민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라’는 판결에서 비롯됐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이 “동성결합이 남녀결합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볼 수 없다”며 공단의 자격 불인정이 적법하다고 한 것과 완전히 상반된 판결이다. 2심인 서울고법 재판부는 동성결합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한다”고 했다.
문제는 이런 재판부의 판단이 법률상 또는 사실혼 배우자가 ‘남녀 사이의 결합’인 혼인을 전제한 헌법의 개념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조 제2항 제1호는 피부양자의 자격요건을 ‘혼인’을 전제로 한 ‘배우자’로 한정하고, 헌법재판소나 대법원도 ‘혼인’에 관하여 ‘1남 1녀의 정신적·육체적 결합’이라는 명확한 정의적 해석을 하고 있음에 비춰 볼 때 일부 판사들의 자의적인 법률 해석이 도를 넘었다는 우려가 나올만하다.
이런 시점에서 사법부가 헌법을 준수하는 데 있어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할 대법원장이 헌법이 정한 ‘양성평등’이 아닌 ‘성평등’ 구현을 들먹이는 건 정상적인 법체계를 흔들고 심각한 사회 혼란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온당치 않다.
이번 대법원장 후보자의 낙마는 그 배경에 야당의 정치적 의도가 다분해 보이지만 ‘성평등’ 등 헌법 질서를 흐트러뜨릴 수 있는 위험한 발언으로 후보자 스스로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은 후보 검증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다시 점검할 것을 권한다. 아울러 일부 진보 판사들에 의해 무너진 법질서를 바로 세울 적임자를 조속히 추천해 대법원장 공백 사태에 따른 국민 피해 최소화에 만전을 기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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