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통합총회)가 제108회 총회 직후에 ‘차별금지법과 개정 사립학교법, 학생인권조례 및 동성애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9월 총회에서 선출된 김의식 총회장과 신 임원들이 시무식을 겸해 마련한 자리에서 주요 현안에 대한 교단의 견해를 밝혔는데 매우 이례적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통합 총회장 김의식 목사와 임원들은 지난달 25일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을 참배했다. 교단의 중책을 맡은 임원으로서 새롭게 각오를 다지는 성격이다. 그런데 이전 임원들과 확연히 다른 점이 눈에 띈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역에서 시무식을 가진 후 곧바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이동해 ‘차별금지법(안)과 개정 사립학교법, 학생인권조례 등에 대한 교단의 입장을 밝힌 점이다.
김 총회장은 직접 읽은 입장문에서 “최근 한국기독교의 사회에 대한 기여에 대해 부정하거나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는 몇 가지 정책 시도 등 우려할 만한 사안에 대해 입장을 표명한다”라고 한 후 “본 총회는 우리 사회 일각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힌다”라고 했다.
통합총회는 ‘차별금지법’에 대해선 줄곧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지난 2020년 제104회 총회를 앞두고 총회장과 임원과 전국 노회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총회장과 임원들의 입장문 발표는 장소가 국회의사당 앞이란 점을 빼곤 새로울 게 없다. 그럼에도 회기가 바뀔 때마다 교단 지도부가 거듭 입장을 밝히고 나서는 건 이 문제에 관한 한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그럴만한 속사정이 있어 보인다. 우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놓고 진보 성향의 교계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오랜 갈등 관계인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통합총회는 진보 성향의 NCCK와 중도보수 성향의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에 모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이 두 연합기관에 참여하는 교단이 예장 통합 외에 기독교대한감리회도 있지만,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창립됐을 당시만 해도 진보와 보수 동시에 활동하는 교단은 통합총회가 유일했다.
이건 교단이 그동안 견지해온 색깔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통합 측은 신학적으론 보수적 성향을 지니면서도 WCC 등 에큐메니칼 진영에 속해 있다. 이는 합동 측과의 교단 분열 이후 더욱 두드러진 경향이다.
문제는 이런 정체성이 한국교회 보수·진보 모두를 아우르는 데 있어 유리한 위치에 있지만, 때론 양쪽으로부터 눈총을 사는 일이 생긴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에 NCCK가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문제에 있어 한국교회 전체 의사와 정반대의 태도를 취함으로써 교단이 내부적으로 큰 곤욕을 치렀다. 교단의 사무총장을 지낸 이홍정 목사가 NCCK 총무로 부임한 후 이런 문제들이 불거질 때마다 교단이 난처해진 측면이 있다. 이 총무가 결국 중도 사퇴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소속 교단과의 갈등을 끝내 해소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김 총회장과 교단 임원들이 굳이 이런 이례적인 시무식을 계획한 배경엔 다른 고민도 엿보인다. 그건 제108회 총회 개회 기간 수요일 명성교회에서 열린 에큐메니칼예배에서 WCC 인사가 발표한 ‘한반도 종전선언’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통합총회는 해마다 총회 기간에 관례적으로 해외에서 온 자매 교단과 WCC, CCA 등 해외 협력기관 대표들이 참석하는 에큐메니칼예배를 드려왔다. 그런데 이번 예배 도중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한국전쟁의 종전을 공식적으로 선포해야 한다”라고 한 성명서 내용이 논란을 키웠다.
‘한반도 종전선언’ 지지 성명은 교단 총회 기간 중 발표되긴 했으나 엄밀히 말해 교단이 정식 결의해 채택한 문건은 아니다. 김 총회장도 “사전에 면밀하게 검토하지 못한 불찰이 있었다. WCC의 발표일 뿐 총회장 저 자신이나 총회 의사와는 반대되는 견해”라고 했다. 김 총회장의 말대로라면 이런 문건을 발표 전에 걸러내지 못한 건 실무자들의 단순 불찰일 수 있다. 그러나 WCC가 통합총회와 함께 한반도 종전선언 캠페인을 전개해 왔고 그 과정에서 논란이 일어 중단된 사례가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좀 더 신중하게 살폈어야 했다.
교단이 어떤 특정 사안에 대해 견해를 밝히는 건 전적으로 교단이 정할 문제다. ‘차별금지법’이나 ‘종전선언’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교단 내부에서 여러 입장이 동시에 나오는 건 좀 다르다. 특히 교계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한 입으로 두말이 나오는 듯한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사안의 경우 김 총회장이 밝힌 대로 총회장 자신과 총회 의사와 반한다면 단순 불찰로 덮을 게 아니라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교단이 지난 제104회기에 ‘차별금지법’ 반대 입장을 표명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임원회가 전국노회장회의를 열어 교단의 분명한 의사를 밝히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논란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통합총회가 한국교회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거의 유일한 교단이란 점에서 리더십에 본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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