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39~40)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 17:12)

1. 견인 교리의 중요성

알다시피 도르트 회의(1619)에서 작성된 칼빈주의 구원론은 TULIP으로 명명되는 5대 교리로 압축됩니다. 그중 견인 교리는 제일 마지막 다섯 번째로 나타납니다. 견인 교리의 요점은 한 번 구원 받은 성도의 구원은 영원히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원불변하시고 완전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람으로 선택한 사람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지도 않고, 끝까지 붙드시고 구원하신다고 성경을 통해 계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견인 교리를 다른 말로 ’영원한 보장‘(everlasting security) 혹은 ’완전한 안전‘(a perfect security)이라고도 부릅니다.

실상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성도의 견인교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교리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구원에 대한 확신의 여부가 결정되고, 나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자세와 태도가 달라지며 더욱이 인생의 주체가 하나님이냐 인간이냐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도 견인 교리에 대한 수용 여부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교리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합니다. 견인 교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교리 는 신자들로 하여금 구원에 대한 지나친 방종으로 유도한다고 비판합니다. 즉, “나는 이제 구원을 받았으니 더 이상 구원을 위해 애쓸 필요가 없으므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아도 된다”는 안이하고 방만한 삶을 부추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자들은 성경에서 견인교리를 반대하는 듯한 구절들을 근거로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이들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사례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1) 예수님은 스스로 믿는다고 하는 자들도 그 사랑이 식어 떠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1~13)

이 말씀에 따르면 구원을 얻는 자는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라 인간 편에서 끝까지 견뎌야 하는 조건을 충족해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런 뜻일까요? 말세에는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지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증거 되지 않는 시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신자는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신자로서 마땅히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스스로 그런 사랑을 증거 할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성령 하나님께서 택하시어 구원을 받은 성도로 하여금 그런 사랑을 하도록 힘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도우시기에 사랑해야 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세에 제아무리 사랑이 식어지고 성도에 대한 핍박이 가중된다 해도 사랑의 능력을 잃지 않도록 성도 스스로 경계심을 가지고 있으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2) 사도 바울은 딤후 2:16~18에서 후메네오와 빌레도 두 사람의 배교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에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중에 후메네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니라”(딤후 2:16~18)

이에 따르면 두 사람처럼 처음에는 잘 믿었다가 점점 불경건한 일에 참여하게 되고 그릇된 진리를 가지게 되며 이로 인해 사람들의 믿음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으로 들립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에 대한 답변은 사도 요한의 언급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적그리스도와 선지자들에 대해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으니”(요일 2:19, 3:9~10)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끝까지 구원의 반열에 속하지 못하고 도중에 이탈함은 처음부터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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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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