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합동)가 교단 최초로 여성 사역자에게도 ‘설교권’을 주기로 결의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했다. 교단은 제108회기 총회 둘째 날인 19일 오후 회무에서 ‘여성 사역자의 목사후보생 고시와 강도사 고시 응시 자격’을 허락했다. 그러나 이후 교단이 여성 안수를 이미 허락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섣부른 보도 등에 부담을 느낀 총대들이 이 결정을 스스로 거둬들였다.
합동 총회가 결의했던 건 ‘여성 사역자의 목사후보생 고시와 강도사 고시 응시 자격’ 허락이다. 이는 여성 목사 안수와는 염연히 차이가 있다. 안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성이 강단에서 설교할 수 있도록 사실상 권한을 부여한 건데 이 정도의 변화만으로도 그동안 억눌려왔던 교단 내 여성 사역자들의 지위 향상과 사역 확장에 전환점으로 평가될 수 있었다.
그런데 총회 다음 날 하루 전에 결의한 사항이 뒤집혔다. 교단이 여성 안수를 허락한 게 아닌데도 이미 허락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는 일부의 시각에 극심한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모 목사총대는 “어제 결의 이후 우리 결의 정신과 관계없이 예장 합동이 이미 안수를 허용했다는 식으로 보도가 나갔고, 심지어 신대원 여학생들은 ‘강도사고시 치고 다음에 목사고시까지 치르는 길이 열렸다’는 말이 돈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합동 총회가 하루 전 결의를 번복할 정도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 이유는 교단의 헌법과 정체성에서 여성 안수를 허락할 조금의 여지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성에게 목사 후보생 고시와 강도사 고시를 치르게 할 경우 결국 목사 안수를 막을 길이 없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여성안수를 허락하는 것과 강도사 고시 응시 자격 부여는 분명 다른 개념이다. 강도사 고시에 합격해도 교단 헌법이 불허하는 한 안수를 받을 길은 없다. 하지만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강도사고시에 합격한 여성이 교단을 상대로 법적 소승을 제기하면 교단이 난처한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
강도사 고시는 목사가 되기 위한 일종의 자격시험 성격이다. 그런데 교단이 시험 볼 자격은 주고 목사 허락을 안 하면 법적 다툼이 일어날 때 교단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요량으로 총회 결의마저 단 하루 만에 거둬들인 측면이 있다.
그 대신 여성 사역자들의 실질적 처우 개선을 위해 그동안 활동해온 지위향상위원회를 ‘여성사역자 TFT’로 명칭을 바꿔 특별위원회로 존속하기로 하고 그 조직을 총회 임원회에 맡겼다. 목사 안수를 허용할 수 없으나 그에 준하는 연구안을 새로 만들어 보겠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어떤 묘안이 여성 사역자들의 실망과 상실감을 상쇄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합동 총회가 여성 사역자들의 간절한 외침에 이제야 반응하는가 싶었던 ‘강도사 응시 자격 허락’은 끝내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이런 분위기를 위식한 듯 오정호 총회장은 “총회 임원회에 맡겨 달라. 총신대 M.Div.를 지원하는 여학생들이 평생 전도사에 만족하겠냐고 할 때 ‘아멘’이 나오도록,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겠다”고 했다.
오 총회장의 다짐은 총회가 여성 안수에 버금가는 지위를 여 교역자에게 부여하는 획기적인 연구안을 만들어 다음 총회에 내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려면 일단 총회 임원회에게 맡겨진 ‘여성사역자 TFT’가 어떤 생각을 가진 인사들이 포진하느냐가 일차 과제다.
그러나 총회 석상에선 이미 “신대원을 졸업한 우수 여자 원우들에게 교육사, 신학사, 목양사, 신학교육사라던가 하는 지위를 분명히 명시하는 직위를 만들고 부목사에 준하는 예우를 하고 당회에서 허락하면 강의나 설교도 당회의 지도하에 할 수 있도록 연구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이것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라면 크게 기대하긴 힘들어 보인다.
예장 합동측은 한국교회에서 여성 안수를 불허하는 몇 안 되는 교단이다. 연합사업을 함께 하는 통합 등 대부분의 교단이 오래 전부터 여성 안수를 허락한 것과 대비된다. 성경의 정신이 여성 안수를 불허한다는 것이 교단의 정체성이고 헌법인 이상 다른 출구는 없다. 다만 이런 정체성이 여성 사역자들을 교단에서 떠나게 하는 뼈아픈 현실에 직면해 있을 뿐이다.
총회가 여성에게 목사 후보생 고시와 강도사 고시 응시 자격을 허락한 데는 이런 교단의 고민에 총대들이 어느 정도는 공감했다는 뜻이다. 헌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여성사역자들의 인재 유출을 막고 여성 준목제도로 뿌리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안이 엎어지면서 지금까지의 구상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이는 교단이 우려했던 문제들이 도돌이표가 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차세대 여성 사역자들이 교단을 떠나 타 교단으로 떠나는 현실을 무엇으로 막을지 그런 고민에서부터 총회 이후 교단이 풀어가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합동측은 교회 수에서 한국교회 제1 교단이다. 목회자 수도 가장 많다. 그러나 최근 한국교회에 불어 닥친 급격한 교세 감소 추세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여성 안수 불허 고수가 교단 안팎에 여성에 대한 차별로 인식돼 젊은 세대가 교회를 등지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게 공통된 고민거리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합동측 총회는 성경에 대해 보수적 가치를 견지해 나가는 것과 그로 인해 파생된 현실 사이의 ‘딜레마’를 푸는 무거운 숙제를 교단의 새 지도부에 넘긴 총회로 기록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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