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생활 전반에 급속히 전파되면서 AI가 목회자의 영적 영역을 대체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될까 궁금증이 드는 요즘, 독일 바이에른주 소재 성바울교회에서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세계 최초로 생성형 인공지능인 챗GPT(ChatGPT)가 주관하는 예배가 지난 9일 이곳에서 있었는데 참석한 신자들의 반응은 긍정과 부정으로 엇갈렸다.
챗GPT가 구현한 이 예배의 집례와 설교자는 수염을 기른 흑인 남성 아바타의 모습으로 스크린에 등장했다. 그는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과 단조로운 목소리로 “올해 독일 개신교 대회에서 최초의 인공지능으로 설교하게 돼 영광”이라고 인사한 뒤 “예수를 신뢰하면서 과거를 뒤로하고 현재의 도전에 집중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라”는 내용의 설교를 했다.
챗GPT의 주도 하에 약 40분 동안 이어진 예배엔 이 흑인 설교자 아바타 외에도 여성 2명, 남성 2명 등 총 4명의 아바타가 등장해 예배 순서를 진행했다고 한다. 인공지능 예배를 기획한 빈 대학교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요나스 심머라인은 AP와의 인터뷰에서 “예배의 98% 정도를 챗GPT가 만들었다”고 했다. 이런 예배에 대한 아이디어는 자신의 머리에서 나왔지만 내용은 전부 챗GPT가 주도했다는 의미다.
이날 챗GPT 예배에 참석한 약 300여 명의 신자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신자 중 한 사람은 AP와의 인터뷰에서 “마음도 영혼도 없으며, 아바타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몸짓도 없었으며, 빠르고 단조롭게 말해서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반면에 “(아바타가)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 정말 놀랐다”며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AP가 전한 이날 예배 분위기는 일부 신자들이 휴대전화로 예배를 촬영하고, 어떤 이들은 언짢은 표정으로 주기도문을 따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가지고 모든 걸 판단할 수는 없으나 대체로 교회에 온 신자들이 예배드린다는 의미보다는 인공지능이 얼마나 놀라운 신기술인지 구경하고 관찰하려는 목적이 더 컸던 게 아닐까 싶다.
인공지능은 인간과 비교해 지각 능력 등에서 빼어난 능력을 발휘하나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것 중에 따라할 수 없는 게 있다. 그건 바로 사람의 마음을 읽고 소통하는 기능인 감성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서 목회자가 전하는 설교와 기도 등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닌 영적 감성의 소통이 절대적이다. 그런 점에서 과연 AI에 의한 아바타가 집례하는 예배를 예배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예배하는 이들이 예배를 통해 감화 감동을 받는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인간과 똑같은 언어로 말하는 AI에게서 지식을 습득할 순 있어도 공감하는 건 완전히 다른 영역이란 뜻이다. 즉 눈에 보이지는 않는 마음과 영적인 교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건 아무리 형식을 갖춰도 예배라 할 수 없다.
독일의 개신교회에서 처음으로 챗GPT가 구현한 이 예배의 형식은 AI가 인간의 영역 어디까지 깊숙이 들어오게 될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이목을 끈 게 사실이다. 그러나 기술적인 면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긴 했어도 오히려 그 한계를 뚜렷이 보여준 채 끝났다. 앞으로 더 나아진 기술력을 선보인다 해도 예배를 대체하는 것으로 인정받긴 힘들어 보인다는 말이다.
유럽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일들이 당장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한국교회가 챗GPT에 대해 명확한 인식 정립조차 돼 있지 않은 만큼 앞으로 혼란을 겪지 않으려면 차분한 준비가 급선무다. 특히 AI 기술이 목회와 예배, 교육, 선교 등 교회의 여러 분야에서 통용될 만한 잠재력을 가진 만큼 신중한 고려와 분별력이 선행돼야 할 줄 안다.
사실 한국교회 성도들은 목회자가 챗GPT를 이용해 설교문을 작성하는 등 아주 기초적인 것조차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 미래목회와말씀연구원과 목회데이터연구소가 목회자 65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챗GPT를 이용한 설교문 작성에 ‘교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교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응답한 수의 2배가 넘는 54%였다.
조사를 담당한 목회데이터연구소 측은 한국교회 성도들이 챗GPT에 대체로 부정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는 원인으로 “챗GPT를 설교에 활용할 때의 문제점, 표절 문제, 설교 준비에 대한 우려” 등을 꼽았다. 아무리 챗GPT가 발전을 해도, 성도들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목회자라면 묵상과 기도, 연구와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력으로 설교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 현실은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이 조사에서 목회자 절반 정도가 챗GPT를 사용해 본 경험 있고, 이 가운데 42%는 목회‧설교를 위해 실제로 챗GPT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응답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교회 목회 현장에서 챗GPT에 대한 긍정과 부정, 친밀감과 거부감이 혼재돼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목회자들이 예배 등 목회 영역에 챗GPT를 활용하는 걸 반기지 않는 눈치다. 반대로 목회자들은 관심이 지대하고 앞으로 설교 준비 등에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에 간격을 좁히는 과정에서 혼란이 생기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교회에 돌아가게 된다.
빅데이터를 통한 인공지능의 발전은 이제 받아들이고 말고의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현실적으로 교회만 문을 꽁꽁 걸어 잠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사회 어느 분야보다 더 힘들고 복잡한 고민을 할 때가 됐다. 문명의 이기가 편리함과 사회의 성장 발전을 가져다줬지만 그와 함께 영적인 나태와 자만으로 모든 걸 잃고 추락하지 않도록 신중하고 지혜로운 취사선택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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