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때 통일부가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고 법인 허가를 취소한 게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특별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달 27일 자유북한운동연합이 통일부 장관을 상대로 낸 ‘비영리법인 설립 허가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통일부의 법인 허가 취소 처분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 2심 모두 ‘전단 살포가 공익을 해하는 행위’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대법원이 원고 손을 들어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통일부가 자유북한연합의 법인을 취소한 것이 부당하니 원상 복구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대북 전단 살포가 공익에 반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대북 전단 살포가 공익에 반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대법원의 판단은 곧 전단 살포 행위에 긍정적 측면을 인정했다는 것과 직결된다. 그러니까 북한 인권문제에 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한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인정한 반면에 대북 저자세로 일관한 문 정부의 조치는 기본권 침해이자 ‘과잉금지 원칙’ 위반이란 점을 확실히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탈북민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 2020년 인천 강화와 경기 파주 등에서 세 차례에 걸쳐 대북전단 50만 장 등을 담은 대형 풍선 여러 개를 날려 보냈다. 그러자 나흘 뒤 북한 김여정 부부장이 개인 명의로 담화를 내 “남조선 당국이 응분의 조처를 세우지 못한다면 △개성공단 완전 철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남북 군사합의 파기에 나설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김여정이 곧바로 문 정부를 향해 ‘(대북전단 살포를)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자 통일부가 즉시 나서 전단 살포 금지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고 나서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했다.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안전 위험을 초래하는 등 공익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해 12월에 국회에서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소위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대북 전단을 살포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게 골자다.
이 법에는 ‘김여정 하명법’이란 별칭이 따라다닌다. 북한 김여정의 말 한마디에 통일부가 “전단 살포 금지법을 추진 중”이라고 하더니 바로 여당인 민주당이 단독으로 밀어붙여 만든 법이란 특징 때문이다.
통일부는 대북 전단지 살포가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초래하는 행위라며 애초부터 대북 전단 살포를 중단시킬 법률 정비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여정이 탈북민 단체의 삐라 살포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엄포를 놓자 정부와 여당이 서둘러 법안 마련에 나섰다는 점에서 시점과 배경이 김여정의 담화 발표와 겹치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대법원이 대북 전단을 살포해온 단체의 손을 들어줬지만, 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대북전단금지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전단을 살포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자유북한연합 등 북한인권단체들은 대북 전단 살포를 계속할 계획이어서 이를 둘러싼 위법 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대북전단금지법’이 공포된 직후에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등 27개 단체는 해당 법이 ‘기본권 침해이자 과잉금지원칙 위반’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직후 권영세 통일부 장관도 같은 취지로 헌법재판소에 위헌 의견서를 제출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최근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에 대해 “아주 절대적으로 악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능할 때 그 부분에 대해서 반드시 그 법을 없애도록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전단 살포가 북한 주민에게 정권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으로 북한 인권문제에 관한 국내외 관심을 환기하고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등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판시했다. 헌재도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더 이상의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조속히 위헌 여부를 판단하고 국회도 법 재개정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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