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1일은 대한민국에서 사실상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날입니다.
이날 서울고법 행정 1-3부(부장판사 이승한, 심준보, 김종호)에서 남자 동성애자 커플의 배우자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항소심 소송에서 1심의 판결을 깨고, 동성애자 커플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원래 1심에서는 첫째, 현행법 체계상 동성간의 혼인을 사실혼이라 평가하기 어렵고, 둘째, 혼인이란 대법원, 헌법재판소 판례, 그리고 사회 일반적인 인식을 모두 모아 보더라도 여전히 남녀의 결합을 근본 요소로 하기 때문에 동성간 결합까지 확장해 해석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건강보험료의 부과처분은 행정의 재량준칙으로서 평등의 원칙과 무관하며 동성간 결합과 남녀 간 결합이 본질적으로 같다고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둘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하였습니다.
그런데 항소심에서는 '평등의 원칙'을 주된 판단요건으로 보았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금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남녀 간의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에 대해서도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 왔기 때문에, 남자가 남자와 함께 사는 것 역시 사실혼 관계로 보고 동일하게 차별없이 한 남자를 다른 남자의 배우자로서 인정하여야 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들 남남 동성애자 부부는 2017년부터 동거도 하였고 2019년 5월에는 결혼식도 올렸으며 이후에 가족 간에 서로 왕래하며 마치 남녀가 혼인한 것처럼 부부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이 커플을 남녀간의 사실혼 관계와 달리 취급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판결로 인해 지금까지 한 남자와 한 여자와의 성적인 결합만을 결혼이라고 인정하고 있던 우리나라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한 남자와 한 남자간의 성적인 결합인 동성결혼 역시 진짜 결혼이라고 법적으로 인정해 버리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36조 1항에서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이 인정하는 결혼은 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와의 결합만을 의미하고, 이러한 남녀 양성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혼인과 가족생활을 국가가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최상위법인 헌법이 사실혼이든 법률혼이든 결혼은 오직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그리고 그 결혼만을 국가가 보장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데 일단의 판사들이 헌법과 그간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와 사회의 인식 등을 모두 무시하고 남자와 남자의 성적 결합을 결혼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버린 사상 초유의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요?
사실 이런 상황은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던 때에도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지난 2015년 오바마 대통령 당시, 미국의 각 주는 동성결혼을 합법화시킨 주와 반대하는 주들로 서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방대법원은 미국 내에서 동성결혼에 대한 의견을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한 사건을 맡게 됩니다. 바로 오버게펠 대 호지(Obergefell v. Hodges)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9명의 연방대법원 판사는 5:4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자는 쪽에 손을 들어주었고, 이 판결로 51개주 중에 당시 동성결혼을 반대하던 37개주 마저 자동으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 사건으로 미국에서는 '사법 적극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사법 적극주의'란 사법부에서 입법부의 역할인 법을 새로 만드는 일을 판결로 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원래 동성결혼을 합법화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의 대표인 의회에서 법안을 발의하고 심사하고, 최종적으로 투표를 통해 민의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해야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을 건너뛰어 버리고 연방 대법원 판사 9명의 판결로 전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의사결정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사법 독재주의'라고도 합니다.
동성결혼을 합법화시키기 위해 입법과정을 거치는 것은 너무도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국민들의 반대 여론도 만만치가 않은 상황이었기에 동성애 인권운동가들은 1960년대부터 각종 소송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확대하는 전략을 취해왔습니다. 그리고 사법부인 연방대법원을 통해서 동성결혼 합법화라는 쾌거를 거두었지요.
이 과정을 벤치마킹한 우리나라의 동성애 인권운동단체들도 동일한 수법으로 2016년부터 혼인신고서를 받아달라는 소송을 시작으로 갖가지 소송으로 동성간 성행위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하고, 동성결혼을 합법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그 결과, 드디어 2023년 대한민국 법원으로부터 동성애자들의 성관계를 남녀간의 사실혼과 동등한 것으로 인정받는 판결을 받아내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한국에서도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대법원까지 이 사건을 끌고 올라가서 대법원에서 헌법에 따라 제대로 최종 판단을 해 주길 바라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사회적 부담이 큰 이런 소송에 비용을 대가며 끝까지 싸워줄지도 의문이고 설사 대법원까지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진보 좌파적 성향의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끌고 있는 대법원이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대로 동성간의 결혼은 안 된다고 해 줄지 의문입니다.
여러분은 사막의 낙타 이야기를 아시나요? 사막의 밤은 매우 춥다고 하죠. 그래서 추운 밖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는 낙타를 불쌍히 여긴 주인이 텐트 속으로 조금 머리를 디밀게 해주면 어느새 낙타가 텐트 속까지 들어와 있고, 주인은 밖으로 밀려나 있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동성애자들은 우리 서로 사랑하게 해달라고 줄기차게 외쳐왔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겠다는데 뭐가 나쁜 거냐 했었죠. 그래서 우리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좀 이상한 것 같긴 해도 요즘 시대에 성인들이 서로의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하는 매우 사적인 부분에 대해 타인이나 국가가 그것을 비난하고 금지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론은 점점 더 동성간의 성관계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그러자 이제 이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법적으로 인정해달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법적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은 국가가 제공하는 결혼한 부부들에게 주는 모든 혜택을 동성애자 커플에게도 평등하게 달라는 것이죠. 예를 들면 이번에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과의 소송에서처럼 한 사람을 피부양자로 등록시켜 건강보험혜택을 받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이뿐 아니라 동성간 성관계로 맺어진 이 커플을 결혼으로 인정하게 되면 앞으로 국민연금 수령의 문제, 상속이나 증여의 문제, 심지어 아파트 청약자격 조건 등 일상의 모든 법률 시스템을 이에 맞게 바꾸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법 체계를 송두리째 바꾸어야 하는 엄청난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법체계를 바꾸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면 이제 두 사람이 사랑하고 함께 결혼생활을 누리는 데서 만족하지 않고 자녀를 얻기를 희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생물학적으로는 자녀를 가질 수가 없으니 입양뿐 아니라 대리모 산업이 호황을 누리게 되고 정자와 난자를 사고파는 일 등 생명윤리의 문제까지 발생하게 될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낙타의 이야기처럼 처음에는 아주 작은 권리를 허용해주는 것 같았던 일이 나중에는 본말을 전도시켜 버리게 되는 것이죠.
이번에 판결을 한 판사님들은 정말 단세포적인 생각으로 그냥 동성애자 커플을 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등록시켜주는 것으로 이 문제가 끝날 것이라고 믿고 판결을 했을까요?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21세기는 진화론적 세계관이 우리 주변에 공기처럼 감싸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 사는 우리 모두는 아무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진화론적 세계관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시대와 상황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전통적인 결혼제도였든, 가족제도였든, 지금까지 인류사회의 지혜의 축적물로써 보존되고 지켜왔던 전통과 문화, 사회 시스템들을 이제는 폐기처분하고 보다 진보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혼인관계 밖에서 저질러진 성관계를 간통죄라는 명목으로 처벌했었지만, 성적 순결이 크게 의미가 없어진 오늘날에는 간통죄가 폐지되었던 것처럼 결혼제도 역시 한 남자와 한 여자로 이루어진 관계라는 것이 더 이상 크게 의미가 없어져 버리고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상과 사랑하기만 하면 부부가 될 수 있도록 사회가 진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법률가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판사님들 역시 이런 진화론적 세계관을 자신들의 머릿속에 탑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진 않겠지만 이분들의 판결문을 통해 그런 생각들이 구체적으로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법은 얼마나 더 진화될까요? 그리고 그 진화가 진정한 의미에서 진보일까요? 아니면 우리 사회를 점점 더 타락시키는 퇴락의 길로 인도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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